[기자의 눈/손영일]‘오얏나무 아래 갓 고쳐 쓴’ 권은희 공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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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일 기자
손영일 기자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의 진정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부분이 가장 고민이 깊었다.”

권은희 전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10일 광주 광산을 보궐선거의 새정치민주연합 후보 출마를 선언하면서 이같이 토로했다.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등 경찰 수뇌부의 수사 축소 지시 폭로가 야당의 공천을 노린 의도적 행위로 비칠 가능성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권 전 과장은 지난해 4월 첫 ‘폭로’ 이후 “정치권 진출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지난달 경찰을 떠나면서도 “중단했던 학업을 계속하고, 시민사회 및 변호사 활동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불과 10여 일 만에 자신의 발언을 뒤집었다.

새누리당이 “정치적 사후 뇌물죄에 해당한다”며 새정치연합과 권 전 과장을 싸잡아 비판하자 새정치연합은 “권 전 과장이 국회의원 출마를 위해 사표를 낸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하고 있다.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지만 권 전 과장이 그런 의심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새정치연합이 정부나 검찰을 비판할 때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말을 자주 인용했다. 오해받을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서울시장 선거가 막바지인데 검찰이 농약급식 문제로 서울시 친환경유통센터 압수수색을 할 때나, 이병기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국정원 직원의 사진 촬영 논란이 일었을 때 비판이 그랬다.

하지만 그 기준을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았다. 권 전 과장의 폭로는 1, 2심에서 “신빙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도 새정치연합이 권은희 카드를 고집한 것은 공직 사회를 향해 “야당에 유리하도록 내부 폭로를 하면 야당이 뒤를 봐 주겠다”는 ‘보은 공천’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비치기에 충분하다. 새정치연합이 진정 국정원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는 생각이었다면 권 전 과장을 텃밭인 광주가 아니라 민심의 바로미터인 수도권에 투입하는 것이 더 명분 있을 것이다.

지난해 4월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광주 출신인 권 전 과장을 ‘광주의 딸’로 치켜세웠다가 지역주의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권 전 과장은 ‘경찰의 딸’이라고 말했다. 또다시 그를 ‘광주의 딸’로 한정시킨 것은 새정치연합이다.

손영일·정치부 scud2007@donga.com
#권은희 공천#새정치민주연합#보은 공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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