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관계자는 16일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의 거취를 놓고 하루 만에 임명 강행에서 사퇴로 오락가락하자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의 핵심 권한인 인선이 ‘널뛰기’를 한 배경엔 여러 복합적 요인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당초 국정 공백 최소화를 위해 임명 강행에 무게를 뒀으나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까지 전방위로 압박하자 박 대통령도 물러설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 야당의 추가 폭로 압박에 분위기 반전
새누리당은 11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교문위)를 열어 정 후보자의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채택하려 했으나 야당의 반발로 무산됐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의 A 의원은 새누리당 B 의원에게 “정 후보자의 신상과 관련해 추가로 폭로할 게 있다. 정 후보자를 사퇴시키지 않으면 폭로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메시지는 이후에도 2, 3차례 전달됐다고 한다.
당시 야당은 정 후보자의 신상 문제와 관련해 내용을 잘 알고 있는 인사의 증언을 녹취했다고 전했다고 한다. 정 후보자 낙마의 결정적 원인 중 하나인 인사청문회 ‘위증 논란’도 야당이 관련자의 녹취록을 공개하면서 불거졌다. 이를 전해들은 B 의원은 청와대에 이 같은 분위기를 전달했다. 당시 청와대는 “특정인의 주장일 뿐이지 않느냐”는 반응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15일 정 후보자의 임명 강행을 사실상 공식화하자 야당은 추가 폭로를 예고했다. 이날 교문위 소속 새정치연합 의원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정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강행한다면 16일부터 ‘인사청문회 시즌2’를 시작하겠다”며 “정 후보자와 관련한 의혹을 계속 제기해 국민의 심판을 받도록 하겠다”고 경고했다.
압박 수위는 점점 높아졌다. 새정치연합 박영선 원내대표는 16일 오전 한 라디오에서 “정 후보자와 관련한 여러 제보들이 있다”며 “교문위원들이 ‘입에 담기조차 싫은 내용’이라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구체적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정 후보자에게 더 큰 압박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입에 담기 싫은 내용’에 대한 각종 설(說)이 빠른 속도로 확산됐다. 박 원내대표의 발언 이후 2시간여 뒤 정 후보자는 결국 사퇴했다. ○ 여당도 청와대에 잇단 문제 제기
청와대 내에서는 당초 정 후보자를 둘러싼 여러 의혹과 관련해 정 후보자가 억울한 측면이 있다는 동정론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야당의 추가 폭로 압박은 임명 강행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박근혜 정부 2기 내각이 출범한 이후에도 자칫 ‘검증 국면’의 늪에 빠져 국정동력을 살리지 못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진 것이다.
새누리당 새 지도부의 잇단 문제 제기도 박 대통령이 외면하기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의 한 최고위원은 15일 박 대통령과의 청와대 오찬 회동 당시 “지도자는 결국 인사로 평가받는다”며 “현재 분위기가 좋지 않다. 그 부분을 잘 헤아려 달라”고 총대를 멨다. 김무성 대표도 “국민의 여론이 좋지 않다”고 거들었다고 한다.
이에 박 대통령은 “인사가 쉬운 것이 아니더라. 본인도 가족도 그렇고(고사하는 일이 많고), 결국 사람 찾기가…”라며 정 후보자와 관련해 즉답을 피했다. 하지만 공식 회동이 끝난 뒤 박 대통령과 김 대표가 5분가량 독대를 하면서 정 후보자 거취와 관련해 속 깊은 얘기를 나눴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16일 오전 최고위원 및 중진의원 연석회의 도중 당직자의 메모를 전달받은 뒤 정 후보자의 사퇴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청와대는 정 후보자가 자진사퇴 보도자료를 내기에 앞서 김 대표에게 ‘사퇴 방침’을 귀띔한 것으로 알려졌다. ○ 정 후보자도 막판까지 고심
야당의 추가 폭로 압박에 여당 지도부마저 등을 돌리자 정 후보자는 버티기 힘든 상황이었다. 특히 정 후보자 측은 박 원내대표가 언급한 ‘입에 담기 싫은 내용’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고 한다.
정 후보자는 이날 이른 아침 측근들에게 “야당이 폭로하겠다는 내용이 아무리 사실이 아니라고 얘기해도 일단 야당이 문제를 삼으면 사람들은 사실이라고 믿고, 가족들도 큰 상처를 받는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장관을 하고 싶지는 않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사퇴 보도자료에서 “다 설명 드리지 못하는 부분이 있지만 그냥 물러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밝힌 것은 야당이 이미 제기했거나 추가 폭로할 내용까지 염두에 둔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박 대통령이 계속 고심하고 있는 데다 정 후보자도 물러날 뜻을 비치면서 자연스럽게 자진사퇴로 가닥이 잡혔다는 게 여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정 후보자는 오전 9시가 넘어 ‘사퇴 보도자료’를 문체부에 넘겼다. 박 대통령은 오전 11시경 정종섭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자의 임명을 재가하는 것으로 ‘2기 내각 인사 파동’을 일단락 지었다. ○ 인적 쇄신에 발목 잡힌 박 대통령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이후 석 달 만인 이날 2기 내각을 출범시켰지만 정 후보자의 사퇴로 빛이 바랬다. 세월호 참사 11일 만에 정홍원 국무총리의 전격 사의 표명으로 시작된 ‘세월호 인적 쇄신’은 박 대통령에게 ‘악몽’이었다. 국무총리 후보자들이 도덕성 문제와 자질 시비로 잇달아 낙마하자 사의표명 60일 만에 정 총리를 유임하는 사상 초유의 선택을 해야 했다. 박근혜 정부 2기 내각 지명자(총리 및 장관급) 중 낙마한 인사는 정 후보자, 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 안대희 문창극 총리 후보자 등 4명이다.
박 대통령의 인사가 정국의 최대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가뜩이나 세월호 참사로 떨어진 국정동력은 더 힘을 잃었다. 가장 중요한 시기인 집권 2년 차의 한 분기를 국정 공백 상태로 날려버린 것도 뼈아프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또다시 대통령의 측근들이 인사를 좌지우지한다면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도 무력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대통령의 인식 변화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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