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경이의 외가가 일본이면 친가는 한국입니다. 일본은 저렇게 은경이를 데려오려고 하는데…. 일본이 자국의 납북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10이라면 한국은 1, 아니 0이나 다름없다는 생각까지 드네요.”
28일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김영자 씨(55)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김 씨는 한국인 납북자 김영남 씨(53)의 누나다. 김영남 씨는 일본인 납북 피해자의 상징 요코타 메구미 씨의 남편. 북한은 1977년 납치한 요코타 씨와 1978년 납치한 김 씨를 1986년 결혼시켰다. 이런 ‘기막힌 사연의 부부’가 낳은 딸이 바로 김은경 씨(26)다.
○ 북-일 교섭 보며 상처 입은 한국 납북자 가족
요코타 씨의 부모는 일본인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한 북-일 간 합의에 따라 3월 몽골에서 은경 씨와 상봉했다.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는 28일 평양 소식통을 인용해 “요코타 씨가 사망했다는 2004년 북한의 통보가 거짓이라고 해온 일본 정부가 이번엔 북한과 요코타 씨의 사망을 인정하는 이면합의를 했다”고 말했다. 불편한 문제도 합의할 만큼 북-일 간 협상이 속도를 내고 있다는 얘기다.
김영자 씨는 이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 일본 정부가 사망을 인정해서라도 문제를 해결하려는 요코타 씨가 납북자 김영남 씨의 부인이고, 김은경 씨가 김영남 씨의 딸이라는 사실은 한국에선 관심 밖의 문제처럼 됐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은경 씨의 11월 일본 방문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는 “고령의 어머니(88)도 손녀딸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에 납북자는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일본인 납북자에 비해 한국인 납북자가 차별받는 건 아닐까.” 김 씨의 머릿속에선 이런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 인력 3명 대 40명, 예산은 3억 대 126억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일본 정부의 납북자 전담 기구인 납치문제대책본부에선 약 40명이 일하고 있다. 본부는 일본 정부가 공식 인정한 납북자 17명의 생사 확인과 귀환을 위한 조직. 본부의 한 해(2014년 4월∼2015년 3월) 예산은 12억5700만 엔(약 126억6000만 원)에 이른다.
정부가 인정한 납북자(6·25전쟁 이후)가 517명에 이르는 한국 정부의 사정은 어떨까.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한 전담 기구는 없다. 통일부 이산가족과 내에 근무하는 직원 3명(서기관 사무관 주무관)이 전부다. 예산은 2014년 3억2500만 원. 일본이 납북자 1인당 약 7억4470만 원을 지원할 준비를 갖춘 반면 한국은 1인당 약 63만 원에 불과하다.
통일부는 최근 최성용 대표의 민원에 대한 답변에서 “납북자 업무를 전문적,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조직이 필요하다”며 “전후 납북자 업무 담당 부서 신설을 포함한 직제안을 매년 안전행정부에 제출하지만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 8.9%에 불과한 납북자 생사 확인
한국 정부의 납북자 문제 해결은 이산가족 상봉 행사 때 납북자를 포함시켜 일회성으로 가족을 만나는 방식에 기대고 있을 뿐이다.
통일부에 따르면 2000∼2014년 상봉행사 때 북한에 생사확인을 요청한 납북자는 140명. 생사가 확인된 사람은 46명뿐이다. 북한은 나머지 94명에 대해선 생사확인 불가라고 통보했지만 이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최 대표는 “납치된 자국민의 생사조차 모르는 비정상적 상황을 박근혜 대통령이 정상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납북자가 내 아들이고 딸이라면 어땠을까. 정부가 제발 납북자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주길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바랍니다….” 김영자 씨는 계속 울먹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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