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윤일병을 구하라]<中>인권지옥 자초한 軍-헛도는 국방부 시계
중심 못잡고 우왕좌왕… 핵심 못짚는 탁상행정
2005년 6월 경기 연천 530GP(최전방초소) 총기난사 사건 이후 노무현 정부는 군 병영생활에서 사건 사고 예방을 위한 병영생활 개선을 국방부의 중심 정책으로 내세웠다. 그런 군의 모토는 2008년 정권이 바뀌자 ‘전투형 군대 육성(fight tonight)’으로 변경됐다. 군 복무 여건 보장과 강군 육성은 군이 동시에 이뤄야 할 목표. 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방점이 바뀐 게 현실이다. 그러면서 국방정책은 혼선을 빚었고 결국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쳤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러는 동안 군의 인권 사각지대에선 온몸에 멍이 들고 짓밟히는 병사들의 신음이 터져 나왔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국방부는 다양한 개선책을 쏟아냈다. 문제는 실시되지 않거나 실패한 뒤에도 보완점을 찾는 노력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충분한 고민 없이 재탕, 삼탕으로 나온 해법들이 일선 현장의 피로감만 키운 게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 정권마다 바뀌는 정책…균형 못 잡은 군(軍)
2008년 2월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초대 국방부 장관인 이상희 장관은 ‘전투형 군대 육성’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국방부가 ‘병영문화 개선 대책위원회’를 만들고 ‘가고 싶은 군대, 보내고 싶은 군대’를 위한 9개 과제 30개 실천사항을 담은 ‘선진 병영문화 비전’을 발표한 지 2년 3개월 만에 국방부의 정책 방향이 선회한 것이다. 군 관계자는 “MB 정부가 전 정권과의 차별화를 위해 강군 육성을 밀어붙이면서 병영생활 개선과 관련 조직은 축소됐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군 내에서 정상적인 활동을 하다 발생한 사고는 지휘관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정책의 변경은 혼란과 사고로 이어졌다. 과도한 훈련이 누적되면서 피로를 호소하던 병사들을 사지로 내몰았다. 2008년 10월 한 달 동안에만 무려 13명이 부대 부적응과 업무 부담을 이유로 투신하거나 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해 10월까지 누적된 사망자는 병사와 간부를 합해 모두 61명에 이를 정도였다.
그러자 국방부는 부랴부랴 군 내 자살 등 사건 사고를 예방하는 방향으로 다시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사건 사고 예방을 강조하는 공문들이 일선 부대에 내려갔다. 전투형 군대 육성의 목소리도 점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 말뿐인 정책, 일선은 피로감만 쌓여
사고가 터질 때마다 국방부가 발표한 각종 정책은, 구호에만 그치고 시행도 되지 않는 전형적인 탁상공론 행정에서 나온 것이었다.
530GP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직후 국방부는 GP·GOP(일반전방소초)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의 복무 기간을 줄이는 방안을 발표했다. 당시 24개월이던 육군 복무 기간을 GP·GOP 근무 병사는 20개월, 해안 경계초소 근무 장병은 22개월로 각각 단축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방안은 논의만 되고 시행되지 않았다.
같은 해 10월엔 비무장지대(DMZ)에서 근무하는 병사의 위험수당을 4배로 인상하겠다는 방안이 제시됐다. 당시 DMZ 근무 장병에게 지급되던 위험수당 1만5000원을 6만8000원으로, 간부의 수당은 6만 원에서 24만 원으로 늘리는 것이었지만 이 또한 시행되지 않았다. 국민권익위원회 관계자는 “예산 등 변수들을 고려하지 않고 보여주기 식 정책을 나열하다 보니 이런 무리한 정책들이 나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병사들의 DMZ 근무 위험수당은 1만6500원, 간부들의 수당은 6만 원으로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
2006년 4월엔 장병에게 부대 재배치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겠다고 했다. 당시 진행 중이던 군인복무기본법 개정안에 ‘부대 재배치 청구권’ 조항을 신설하겠다는 것이었지만 이 또한 논의만 하다 시행하지 않았다. 2008년 1월 동기끼리 소대 및 중대를 만들어 시범 운영한 ‘동기생부대’도 동기생들끼리 우열과 파벌이 만들어졌고, 그해 4월 병사가 사망하자 바로 중단됐다. 육군은 올해 관리 간부 수만 늘린 가운데 또다시 분대와 소대 단위로 2개 사단에서 동기생 부대를 다시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본질적인 처방 없이 문제가 됐던 정책을 다시 추진하고 있어 언제 중단될지도 모르는 운명인 셈이다.
○ 기본만 지키면 막을 수 있었다
안정적이고 효율성이 높은 강한 부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책을 쏟아내기보다는 국방부가 현재 갖추고 있는 시스템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방부는 ‘장병신체검사-부대관리훈령-전공사상자처리훈령’의 시스템으로 병력 자원을 관리하고 있다. 국방부에서 입영 당시 적절한 자원을 뽑을 수 있는 지침을 만들고(입영차단·장병신체검사), 입영한 자원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하며(부대관리훈령), 사고가 난 뒤 올바르게 수습하는 절차(전공사상자처리훈령)를 지속적으로 점검하면서 일선 지휘관들을 통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선 하급 장교들의 이해도가 낮아서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방 사단에서는 ‘전입신병관리매뉴얼’을 갖추고 있지만 초급 간부들은 이런 매뉴얼의 활용은 물론이고 심지어 존재조차도 모르는 경우가 없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부대관리훈령과 전공사상자처리훈령을 명령에서 법으로 격상시켜 구속력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국방부가 훈령을 원하는 방향대로 바꾸기 위해 이런 요청을 계속 거부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육군 28사단 윤모 일병 폭행 사망 사건과 관련해 4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긴급현안질의에서 새누리당 간사인 홍일표 의원은 “병영 관리의 투명성을 위해 부대관리훈령을 법으로 격상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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