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가 입수한 14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윤 일병 사건’ 수사기록과 제28보병사단 보통검찰부의 ‘윤 일병 사건’ 공소장(2014년 5월 2, 19일)에 나타난 윤 일병의 부대생활은 한마디로 ‘생지옥’ 그 자체였다. 공소장에 기록된 3월 3일부터 4월 6일까지 이모 병장을 포함한 6명의 피고인들이 윤 일병에게 가한 폭행 횟수는 300회를 훌쩍 넘었다. 기록을 통해 윤 일병이 목숨을 잃기까지의 상황을 재구성했다.
○ 윤 일병, ‘악마’를 보다
윤 일병에게 가장 가학적인 폭행을 가한 ‘주범’ 이 병장의 공소사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잔인하고 집요했다. 공소장의 범죄일람표를 보면 이 병장은 3월 8일부터 한 달여의 기간에 30여 차례 구타를 가했고 11번에 걸쳐 가혹행위를 했다고 적혀 있다. 이 병장이 휴가였던 3월 17일부터 25일까지 일주일가량만 폭행이 없다.
2월 18일 자대배치를 받고 2주간의 대기기간을 거친 윤 일병에게 3월 초부터 악몽이 시작된다. 이 병장과 이 상병은 윤 일병이 대답을 제대로 못한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의무창고에 데리고 가 때리기로 모의하고 실제로 행동에 옮긴다.
폭행은 시간이 지날수록 엽기적인 가혹행위로 변했다.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못했다는 이유로 윤 일병의 입에 치약을 짜 넣고 삼키게 하거나 윤 일병이 대답을 잘 못하고 무시하는 것 같다며 생활관 바닥에 가래침을 뱉어 피해자에게 핥아 먹도록 했다. 4월 6일 0시에는 이 병장이 윤 일병의 속옷을 찢고 갈아입히기를 반복하며 5차례 폭행했다고 이 상병이 진술하기도 했다.
○ 정신 잃기 전 25분간 ‘64회’ 폭행
윤 일병을 사망에 이르게 했던 4월 6일 폭행은 이른 아침부터 시작됐다. 오전 7시 반경 이 병장은 윤 일병의 뺨을 3회 때리고 발로 피해자의 허벅지를 3∼4회 걷어찼다. 이 병장이 잠을 자지 말라고 지시했는데 어겼다는 이유다. 같은 날 낮 12시 반경에는 이 병장이 윤 일병에게 “야이 ○○새끼야! 너랑 나랑 나이 차이가 얼마인데 말을 그딴 식으로 하냐”고 욕설을 내뱉으며 앉았다 일어서기를 4∼6회 시켰다. 오후 2시경 이 병장은 실신한 윤 일병에게 수액과 비타민 10cc 주사를 놓고 다시 때렸다.
오후 4시 7분경 의무반 생활관에서 함께 냉동식품을 먹을 때 폭행은 최고조에 이른다. 이 병장은 윤 일병이 치킨을 먹을 때 쩝쩝거리고 먹으며 질문에 대답이 늦었다는 이유로 주먹으로 윤 일병 얼굴 부위를 2차례 때렸다. 윤 일병은 정신을 잃기 직전 25분간 최대 64번의 폭행을 당한 셈.
폭언도 서슴지 않았다. 오후 4시 12분경 윤 일병이 젓가락질을 잘 못하자 “잘못 배웠다. 우리 아버지도 조폭인데 너의 어미와 누나는 ××냐”며 주먹으로 얼굴을 때렸다. 오후 4시 15분경에는 윤 일병이 입안에 있는 음식 때문에 대답을 잘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주먹으로 피해자 얼굴을 때렸다.
○ 수액 바늘 꽂은 상태에서도 폭행
수사기록에 따르면 이 상병은 “윤 일병이 바닥에 떨어진 음식물을 두 번 정도 핥아 먹은 후 팔에 맞고 있던 수액 정맥주사를 제거해줬다”고 밝혔다. 수액 바늘을 꽂은 상태에서도 폭행을 당하고 가혹행위를 당했던 것.
오후 4시 32분경 윤 일병이 소변을 보고 쓰러지는 것을 본 이 병장은 꾀병을 부린다며 발로 피해자의 가슴 부위를 한 차례 찼고, 윤 일병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하루가 지난 4월 7일 오후 4시 20분 윤 일병은 기도폐쇄에 의한 뇌손상으로 결국 사망에 이른다.
가해자들의 진술조서를 보면 이미 윤 일병은 오전 10시부터 몸 상태가 온전치 않음이 드러난다. 윤 일병이 호흡이 가빠지는 것 같아 하 병장과 이 상병이 가슴 부위를 살펴봤던 것. 하 병장이 이 병장에게 “윤 일병이 숨도 헐떡이고 심한 것 같으니 진료를 받아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어보자 이 병장은 “큰일 났으면 벌써 큰일 났다”고 답했다. 윤 일병의 생명을 구할 마지막 기회도 이렇게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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