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회 가봐야지… 괜찮다는 전화 안믿겨”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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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병 사망 파문 확산/부모들의 분노]
아들 군대보낸 엄마들, 軍 가혹행위에 “하루하루가 불안”

‘샤워할 때라도 살펴봐야겠어. 어디 상처는 없는지….’

이병해 씨(46·여)는 곧 휴가를 나올 스무 살 군인 아들을 기다리며 이렇게 다짐했다. 이 씨 아들은 4월 말 육군에 입대해 이번 주말에 첫 휴가를 나온다. 선임들에게 두들겨 맞아 숨진 윤 일병, 전역 당일 목숨을 끊은 이 상병 등 군대에서 벌어진 끔찍한 가혹행위로 사망하는 ‘대한민국 아들’ 소식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아들을 군에 보낸 엄마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이들에게 윤 일병과 이 상병 사건이 남 얘기일 수 없다. 수십 만 장병의 엄마 모두에게 물어봐도 “군인 모두가 내 아들”이라 말할 것이다. 그게 모정(母情)이다.

○ 들었다 내려놓는 전화

동아일보 취재팀은 7일 아들을 군에 보낸 엄마 15명에게 심경을 물었다. 엄마들은 하나같이 생때같은 아들을 ‘사지(死地)’에 보냈다는 불안감을 호소하며 야만적인 병영문화를 성토했다. 아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떨리는 마음으로 “몸은 괜찮아? 다친 덴 없어?” “선임들이 안 괴롭히니?”라고 물어야 하는 현실이 참담하다고 했다. 혹여나 아들에게 불이익이 갈까 두려워 취재팀에 아들의 이름이나 부대 이름도 알려주지 않았다.

스무 살 아들을 강원도 전방부대에 보낸 엄마 이모 씨(55)는 최근 군대 가혹행위 뉴스를 보고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고 있다. 아들 소속 부대 중대장에게 전화해 그 부대에는 가혹행위가 없는지 물어보고 싶지만 그랬다가 혹시나 아들이 불이익을 당할까 봐 두려운 탓이다. 아들이 얼마 전 전화를 걸어와 “우리 부대는 그런 것 없으니 걱정 마”라며 안심시켰지만 도무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윤 일병이나 이 상병도 혹독한 고통을 당하면서도 부모에게 말하지 않았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아들의 몸이 괜찮은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아 면회를 가려는 엄마들도 늘고 있다. 두 달 전 아들을 육군에 입대시킨 엄마 최모 씨(54)는 조만간 면회를 가 아들의 군복을 들춰 볼 생각이다. 지난달 면회 갔을 때는 주변 선임들 시선이 신경 쓰여 차마 아들 몸을 확인해볼 엄두를 못 내고 말로만 “정말 괜찮은 거냐”고 물어본 게 후회스럽다. 최 씨는 요즘 아들과 통화를 하면 “선임 눈 밖에 나면 안 된다. 인사 잘하고 깍듯이 보필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고 있다. 여자라서 군대 생활을 직접 해보지 않아 이런 말밖에 해줄 수 없는 게 한스럽다고 했다.

엄마의 절망은 분노로 이어졌다.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엄마들 사이에선 “차라리 군대 안 보내고 교도소 보내는 게 낫겠다. 군대 가면 저토록 허망하게 죽는데 교도소는 그래도 살아서는 나오지 않나”라는 극단적인 얘기까지 돌고 있다. ‘군대 내 부당한 가혹행위로 아들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극도의 불안감이 불러온 참담한 발상이지만 그만큼 군인 아들을 둔 엄마들이 불안해 한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남자 친구를 군대에 보낸 여자 친구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연하 남자 친구를 군대에 보낸 이모 씨(24)는 최근 남자 친구가 “소속 부대를 옮긴 이후 소외감을 느낀다”고 털어놓을 때 가슴이 철렁했다. 생활관 병사들이 빨래를 모아 한꺼번에 같이 하는데 빨래 순번에 남자 친구만 끼워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씨는 “남자 친구가 ‘은따’(은근히 따돌린다는 뜻의 속어)를 당하는 것 같다”며 “무슨 일 있으면 혼자 끙끙 앓지 말고 꼭 얘기해 달라고 신신당부했는데 더 큰 일이 생기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다”고 털어놨다.

○ “생활관에 CCTV 설치해 달라”

엄마들은 아들이 대한민국 남아로서 반드시 군복무를 해야 한다면 가혹행위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달라고 입을 모았다. 김모 씨(46)는 “지인의 자제가 군대에서 당한 피해를 청와대 신문고에 올렸는데 부대에서 어떻게 알고 ‘요구를 다 들어줄 테니 글을 당장 지우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며 “내부 부조리에 대해 고소, 고발해도 신원을 철저히 보호해주는 시스템을 만들어달라”고 당부했다. 조모 씨(50)는 “인권침해 논란이 있긴 하지만 지금은 우리 아들들의 목숨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라며 “대부분의 가혹행위가 벌어지는 생활관에 폐쇄회로(CC)TV를 의무적으로 설치해 모든 장면을 녹화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엄마들은 △엄마들이 참여하는 민관군 합동감시단을 만들어 불시에 부대를 방문하게 하자 △소원수리를 해도 필적 조회로 걸린다니 컴퓨터로 쓰게 하자 △화상통화를 의무화하자는 등 모정 어린 아이디어도 쏟아냈다.

동아일보가 인터뷰한 엄마 15명 중 13명은 ‘군인에게 스마트폰을 쓰게 허락해 가혹행위를 알릴 수 있게 하자’는 일부 정치권의 주장은 반대했다. 군대 내에서 벌어진 가혹행위가 부모에게 알릴 수 있는 통신수단이 없어서 숨겨져 온 게 아니라 비합리적인 병영문화로 인한 것이라 근시안적인 대책이라는 지적이었다. 일부 젊은 세대가 무참한 가혹행위를 자행하는 건 스마트폰 중독으로 인해 유대관계에 서툴거나 인간미가 결여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초중고교처럼 업무시간 외의 자유시간에만 제한적으로 허락해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전현우 인턴기자 중앙대 신문방송학부 4학년
#윤일병 사망사건#군 가혹행위#군대 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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