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들 스스로 수칙 만들어 실천… “사고? 우린 몰라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2일 03시 00분


[병영문화 확 뜯어고치자]<中>가혹행위 사라지려면
우리 부대는 이렇게 바꿨다

간부 간섭 없이 군생활 토론 공군 17전투비행단 병사자치위원회 소속 병사들이 11일 병사자치구역 내 회의실에서 간부들의 간섭 없이 후임병들이 제안한 건의사항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고 있다. 청주=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간부 간섭 없이 군생활 토론 공군 17전투비행단 병사자치위원회 소속 병사들이 11일 병사자치구역 내 회의실에서 간부들의 간섭 없이 후임병들이 제안한 건의사항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고 있다. 청주=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조종사들의 성명과 기수 등을 외우는 건 업무를 위한 기초 지식입니다.”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병사들끼리 시험을 치르거나 기한을 정해 압박하는 건 안 좋은 방법입니다.”

11일 충북 청주시 공군 제17전투비행단 병사자치구역 회의실. 공군 병사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27명으로 구성된 병사자치위원회에 속한 병사들로, 후임병들이 문제점으로 지적한 ‘기수 외우기’를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있었다. 간부들은 자리에 없었다. 이형식 상병(21)은 “병사들끼리 편하게 군생활 문제와 해결책을 이야기하고 친분도 쌓을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병사자치위원회는 지난해 4월부터 실시된 17전투비행단만의 제도다. 병사들의 문제는 병사들이 자율적으로 해결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각 대대 소속 병사들의 자원 또는 추천을 거쳐 6개월 임기로 구성되며 선정된 병사들은 근무 일부를 면제받는다. 자치위원회에 속한 장병들은 ‘으뜸 병사’로 불린다. 이들은 건의사항 취합과 환경미화, 부대 행사 등 군생활과 관련된 사항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운영한다. 김진설 병장(24)은 “부모 초청행사 같은 큰 행사도 병사들이 직접 프로그램을 구성해 진행한다”고 말했다. 올해는 200만 원의 예산도 배정받아 병사들이 동아리 운영비, 시설 개선비로 사용하고 있다. 신민구 병장(23)은 “(자치위원회 안에서) 통제나 간섭이 없으니 병사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일과후 눈치 안보며 쉬고 비슷한 계급의 병사 5, 6명 정도만 한 방에서 생활하는 ‘동기생활관’ 운영으로 병사들은 일과 후에도 선임병의 눈치를 보지 않고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편한 자세로 휴식을 취하는 17전투비행단 일병들.
일과후 눈치 안보며 쉬고 비슷한 계급의 병사 5, 6명 정도만 한 방에서 생활하는 ‘동기생활관’ 운영으로 병사들은 일과 후에도 선임병의 눈치를 보지 않고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편한 자세로 휴식을 취하는 17전투비행단 일병들.
공군은 2012년 병영 인권실태 조사 후 지난해부터 병영문화 개선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병사 스스로 규율을 만들어 자율적인 통제가 가능한 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목적이다. 제17전투비행단을 비롯한 전 공군부대에서 진행한 ‘생활관 헌법 만들기 대회’도 그 일환이다.

또한 병사들의 책임감을 고취하기 위해 2007년부터 상병진급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처음으로 분대장(관리자)이 될 수 있는 계급인 상병이 되면서부터 교육을 통해 선후임병을 연결하는 상병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유도해 병영 사고를 예방하고 있다. 2011년 전군 최초로 자살예방 전담교관을 두고 현재까지 16만5298명의 병사와 간부를 대상으로 654회의 예방교육도 했다.

동아리 활동으로 특기 살리고 공군 17전투비행단의 어쿠스틱 기타 동아리 소속 병사들이 11일 새로 배치된 신병들에게 동아리 활동으로 특기를 살리고 선임병들과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동아리 활동으로 특기 살리고 공군 17전투비행단의 어쿠스틱 기타 동아리 소속 병사들이 11일 새로 배치된 신병들에게 동아리 활동으로 특기를 살리고 선임병들과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현장의 호응도 크다. 이광수 17전투비행단장(51·준장)은 “병사들이 병영문화 개선의 주체라는 인식을 갖게 되면서 병영생활에 자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간부들의 부담도 줄었다. 이무열 상사(43)는 “병사들이 먼저 나서 문제점을 이야기해주니 큰 사고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공군은 또 군 최초로 군 사고에 민간 조사위원을 참여시키기로 했다. 공군은 이달 7일 한국심리학회와 ‘범죄사건 조사 시 전문가 참여제 운영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하고 전국 주요 대학 내 심리학 교수 및 석·박사로 구성된 전문가들을 부대별 범죄심리 전문가로 위촉했다. 이들은 범죄사건으로 형사 입건된 장병들에게 상담 및 성격검사 등을 실시하고 성장 과정 등을 조사함으로써 범죄행위의 내적 원인을 규명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육군 61사단은 지난해 1월부터 언어개선 시범부대로 선정돼 폭언 근절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가혹행위의 출발점은 언어폭력이라는 취지에서다. 간부 2명과 병사 1명으로 구성된 ‘언어 친절맨’을 선발해 언어폭력이 있는 병사나 간부에 대해 경고하고 우수 장병을 추천하고 있다. 연대별로 매월 단막극 경연대회를 통해 병영 내 언어폭력 실태를 알리고 개선을 위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시행 전 전체 43%가 변화가 없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꾸준한 노력 결과 지난달 설문조사에서 전 부대원의 83%가 전반기보다 언어폭력이 개선됐다고 답했다.

청주=이건혁 gun@donga.com / 정성택 기자
#수칙#동아리#병영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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