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세월호 특별법 재합의안은 끝내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했다. 20일 오후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 내 미술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가족대책위원회 회의실에서 임원회의와 가족총회를 연달아 연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투표를 거쳐 수사권과 기소권을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에 부여하라는 기존 주장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이기로 했다. 두 차례나 합의안을 마련했던 여야 정치권이 추가 협상을 할 여지는 더욱 좁아진 셈이다.
가족대책위 측은 오후 10시경 가족총회에서 투표를 거쳐 수사권과 기소권이 부여된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요구하는 특별법안을 요구한다는 원안을 고수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표결에는 176가족이 참여했다. 재합의안을 거부한 세월호 특별법 원안 고수에 표결 참여 가족의 75%인 132가족이 찬성했다. 특검 도입안을 포함해 탄력 있는 대안을 검토하자는 의견에 30가족이 찬성했고, 14가족은 기권했다. 유경근 대책위 대변인은 “짧은 토론을 거쳤고 압도적으로 많은 가족들이 진상 규명을 위해서는 특별법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여야 재합의안을 거부한 배경에 대해서는 “정치적인 흥정을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가족대책위의 ‘원안 고수’ 결론은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었다. 19일 여야가 특검추천위 국회 추천 몫 4명 중 여당 추천인사 2명을 야당과 유가족의 사전 동의를 거치도록 합의한 내용에 대해 대책위 측은 “이미 (19일) 국회에서 거부 의사를 밝혔다”고 설명했다. 이날 가족총회 표결은 세월호 특별법을 관철시킬지와 새로운 협상안을 요구할 것인지에 대해서만 물었다.
총회 분위기는 비교적 차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총회에 참석한 단원고 유가족 안모 씨(46)는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다. 가족들은 설명을 듣고 곧장 투표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세월호 유가족 A 씨(49)도 “세월호 유가족이 동의하지 않는 여야 합의안은 효력이 없다. 세월호 특별법 등 세월호 관련 모든 법안과 정책은 유가족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가족들을 설득해 재합의안을 관철하려던 새정치민주연합의 노력은 물거품이 됐다. 새정치연합 박영선 원내대표는 가족들을 설득하고자 오후 5시경 화랑유원지의 가족대책위를 찾아 “야당 목소리가 많이 반영됐다”고 설득하는 동시에 “능력이 모자라서 저희가 잘못했으니 용서해 달라”고 읍소했으나 허사였다. 유가족들은 “지금은 (정부 및 여당과) 전쟁 중인데 적과의 동침을 했다” “한계가 있으면 야당은 빠져라. 못하겠으면 (우리를) 다 죽이라”며 격한 반응을 쏟아냈다. 박 원내대표의 해명을 듣던 한 유가족은 의자를 집어 던진 뒤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강경한 태도를 보이기는 했지만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협상 지연과 여론의 변화 기류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전명선 세월호 가족대책위 부위원장은 박 원내대표에게 “우리가 한두 번 여당 추천 인사를 거부하면, 세월호 참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국민들은 유가족이 진상 규명하는 특검을 막는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들 내부에서는 협상안을 받아들이고 챙길 건 챙겨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총회에 참석하지 않은 한 유가족은 “유가족 동의 없이 협상을 한 야당 잘못이 크지만, 가족들도 어느 정도 물러설 생각은 해봤어야 하는데…”라고 안타까워했다. 다른 유가족도 “100%를 다 얻으려다 보니 실패가 반복된다. 최소한 단식을 하고 있는 유민 아빠(김영오 씨)는 살려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다른 유가족도 “시간을 끌면 국민적 관심만 줄어들고 괜한 오해만 살 것 같다”고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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