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특정 지역에서 장기근무를 하도록 한 이른바 ‘향판’(지역법관) 제도를 폐지하고 특정 권역 근무 기간을 최장 7년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일당 5억 원의 ‘황제 노역’ 판결 논란을 비롯해 향판과 지역유지 간의 유착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돼 온 향판 제도가 도입 10년 만에 폐지되는 것이다.
대법원은 22일 ‘지역법관제도 개선안’을 발표하고 내년부터 모든 법관에게 서울과 지방 간 교류 인사를 실시하며 특정 권역에서 계속 근무를 희망하는 법관은 신청을 받아 허용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부산·대구·광주·대전고법 관할로 나뉘는 한 권역에서 근무하는 기간은 최장 7년으로 제한된다. 특정 지역에서 근무할 때도 같은 법원에서만 근무하는 것이 아니라 고등법원 권역에서 본원과 지원 사이를 순환 근무하도록 했다. 개선안은 또 법관이 지방법원 부장판사, 고등법원 부장판사, 법원장 등 상위 보직으로 발령 받을 때도 일정 기간 다른 지방으로 자리를 옮기도록 했다.
전체 법관 2780여 명 중 지역법관 수는 308명. 이 중 절반 이상이 2004년 지역법관을 신청해 10년째 같은 지역에서 근무 중이다. 이들은 내년부터 인사발령 대상자가 된다. 대법원 관계자는 “인사 희망원을 받아봐야 인사이동 폭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인력 수급 사정을 감안해 순차적으로 타 지역으로 전보 발령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역 법조계는 걱정하고 있다. 고참 ‘향판’들이 의무적으로 근무지를 옮기라는 인사를 받으면 이에 반발해 대거 옷을 벗을 가능성도 있다. 이에 더해 각급 고등법원에서 잦은 인사이동이 발생할 경우 새로 부임한 판사들이 사건을 파악하느라 재판이 오래 걸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편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는 법관이 품위를 손상하거나 공정성과 청렴성을 의심받을 수 있는 경우 외부 인사와의 접촉이나 교류를 피하라는 권고 의견을 냈다. 윤리위는 자신이 평소 개인적으로 교류하던 외부 인사가 소송 당사자인 재판을 맡았다면 해당 법관은 적극적으로 사건을 재배당해 달라고 요구하거나 회피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권고했다. 또 직위를 이용해 외부 인사에게 특별한 이익을 제공하거나 그렇게 의심받을 상황을 만드는 것도 피하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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