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위반했지만 좀 억울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 제가 집이 없어 분양을 받기 위해서 청약예금을 들어뒀습니다. 그런데 이게 주소를 서울에서 부산으로 옮기면 무효가 되게 돼 있어요.”
2013년 2월 21일 국회 인사청문회장.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가 손짓까지 써가며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청문회에서 제기된 위장전입 의혹을 해명하기 위해서였다. 정 후보자는 1988년 9월 부산지검 동부지청 특수부장으로 발령받아 서울에서 부산 남구 남천동 아파트로 이사했다. 하지만 자신의 주소를 옮긴 곳은 부산이 아닌 서울 구로구 독산동 누나의 연립주택이었다.
당시 주택공급규칙에 따라 청약통장 가입자가 주소지를 옮기면 청약 1순위 자격을 잃었다. 정 후보자가 주소지를 서울에 남겨둔 이유였다. ‘무주택자로서 어쩔 수 없이 법을 어겼다’는 하소연에 야당 의원들도 더 몰아세우지 않았다. 정 후보자는 1992년 서울 서초구 반포동 아파트를 분양받아 국무총리 취임 직전까지 거주했다.
아파트 분양을 둘러싼 의혹은 공직 후보자들의 인사청문회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골’ 검증 항목이다. 특히 아파트 청약을 하기 위한 위장전입이 자주 지적되는 문제다. 법을 집행하는 법조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2012년 7월 김병화 대법관 후보자는 1988년 9월 서울 동부지청에서 울산지청으로 전근을 가며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의 외조부댁에 위장전입했다. 김 후보자는 “청약예금 자격이 상실될까 걱정이 돼서, 내 집 마련을 하겠다는 꿈이 깨질까 싶어서 외조부 주소지로 이전해 놓았다”며 사과했지만 위장전입을 비롯해 저축은행 수사 개입 등 각종 의혹이 제기돼 결국 사퇴했다.
법원행정처장인 박병대 대법관도 2011년 5월 인사검증 과정에서 1997년 청약 1순위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주소를 거짓 신고한 게 드러났다. 박 후보자는 당시 “일시적인 지방 근무로 주택 청약자격에 불이익이 생길 수도 있다는 막연한 우려로 그랬다”며 “실제로 이득을 보기 위한 시도를 한 적은 없지만 어쨌든 실정법규를 어겨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공직 후보자가 청약을 받은 뒤 아파트 값이 치솟은 경우에도 여지없이 검증대에 올랐다.
3월 취임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인사 검증 과정에서는 서울 강남구 자곡동 ‘래미안 강남 힐즈’ 전용 101m² 분양권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최근 1년여 만에 재산이 3억5453만여 원 늘어난 이유로 이 분양권이 지목된 것. 2012년 6월 분양 당시 3.3m²당 2025만 원으로 공급됐지만 5000만∼1억 원의 웃돈이 붙어 관심을 모은 아파트였다. 이 총재는 “분양권은 오래 살던 서울 노원구 상계동 아파트를 팔고 아내 명의로 일반분양 아파트를 청약해 받은 것”이라며 “재산이 늘어난 것은 분양권이 아닌 한은 퇴직금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이윤호 전 지식경제부 장관은 2008년 2월 인사청문회에서 “서울 여의도에 12억 원짜리 아파트를 보유하고도 부부가 ‘버블 세븐’ 지역인 서울 송파구의 주상복합 아파트에 나란히 청약해 당첨됐다”며 투기 의혹을 추궁받았다. 이 전 장관 본인은 주상복합단지인 ‘잠실 더샵스타파크’의 아파트 분양권을, 부인은 오피스텔 분양권을 가지고 있었던 게 문제가 됐다. 이 전 장관은 당시 “완공되면 실제 이사를 가서 사는 것을 보여주겠다”며 투기를 부인했고, 실제로 이 아파트에 입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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