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에서 불고 있는 탈북자 검거 열풍과 관련해 북한이 중국 정부에 공식 검거 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북한이 중국에 탈북자 대량검거를 공식 의뢰한 이유는 북한을 탈출한 국가급 예술단 단장의 추적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내 대북 소식통은 “탈북한 예술단 단장을 잡으려고 북한이 최근 중국 정부에 검거 요청 공문을 발송했다. 북한이 탈북자 검거를 위해 이름을 적시해 공문까지 발송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라고 밝혔다.
중국 당국은 지난 두 달 새 많은 탈북자를 잇달아 체포했다. 7월 중국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와 윈난(雲南)성 쿤밍(昆明) 지역에서 탈북자 27명이 중국 공안에 체포돼 20일 지린(吉林)성 투먼(圖們)시의 수용 시설 ‘투먼시 공안 변방대대 변방 구류심사소’에 수용됐다. 8월 12일에는 중국·라오스 국경을 넘으려던 탈북자 11명이 윈난성 쿤밍 지역에서 체포됐다.
두 사례는 언론 보도를 통해 공개된 경우이고, 그렇지 않은 사례는 이보다 훨씬 더 많다. 탈북자 지원 민간단체 북한인권개선모임의 김희태 사무국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최근 중국 당국의 탈북자 체포 사례가 크게 늘었다”면서 “우리가 자체 파악한 것만 해도 중국이 체포한 탈북자 수는 6월 20일부터 7월 20일 한 달 동안 100여 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탈북자 업무에 종사하는 한 공직자도 “최근 중국의 탈북자 체포가 과거에 비해 크게 늘었는데 그 배경이 의문”이라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탈북자 상황에 밝은 중국 내 또 다른 대북 소식통은 “국가급 예술단 단장이 중국에서 잠적했고 이를 추적하려고 북한과 중국이 협력해 탈북자 루트를 샅샅이 뒤지는 과정에서 탈북자 조직망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면서 “탈북한 단장은 여성”이라고 말했다. 소식통은 “북한은 이 여성이 외국으로 망명할 경우 큰 문제가 된다고 여긴다. 중국은 물론 중국을 벗어났을 개연성도 있다고 보고 태국 등 동남아 국가의 국경선 지역에서도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해당 국가와 북한 당국 간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잠적 여성은 국가급 단장
사라진 예술단 단장이 어느 예술단의 누구인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국가급 예술단이란 점과 중국에 왔다 사라졌다는 점에서 조선국립민족예술단 단장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조선국립민족예술단은 만수대예술단, 피바다가극단과 더불어 북한의 3대 예술단 가운데 하나다. 조선국립민족예술단은 국가 간 공연에 북한을 대표하는 단체로, 최근 들어 중국 공연을 자주 하는 등 중국과의 교류가 잦았다.
조선국립민족예술단은 지난해 10월 북·중 접경 도시인 랴오닝성 단둥에서 대규모 공연을 해 중국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공연은 당시 열린 ‘북·중 경제무역문화관광박람회’ 행사 중 하나였다. 중국 관영매체 ‘중국신문사’는 당시 공연에 대해 “혁명 가무 위주의 기존 공연 방식에서 벗어나 중국의 인기 가요를 부르는 등 일반인을 위한 공연으로 관객 수천 명으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또 조선국립민족예술단을 북한의 일류 예술가 400여 명으로 구성된 북한 문화외교의 주력군으로 소개하고, 단둥 공연에는 단원 100여 명을 보냈다고 전했다. 조선국립민족예술단은 지난해 초에도 한 달 동안 베이징과 상하이 등 중국 주요 도시를 순회 공연했다.
조선국립민족예술단은 우리와도 인연이 있다. 한때 남한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렸던 조명애가 바로 조선국립민족예술단 출신이다. 조명애는 2002년 한민족통일축제 한마당에 참가하려고 서울에 처음 와 빼어난 미모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후 조명애는 2005년 가수 이효리와 함께 CF에 출연했고, 2007년에는 남북 합작 드라마 ‘사육신’에 출연하기도 했다.
북한이 중국에 매우 이례적으로 검거 요청 공문을 발송하면서까지 국가급 예술단 단장을 붙잡으려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여성 단장이 북한 예술단 내부의 기밀을 상당히 많이 알아 이를 폭로할 것을 우려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이 이처럼 긴장하는 점으로 미뤄 여성 단장이 가진 기밀이 북한 권력 지도부와 연관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국립민족예술단에서 10년간 활동한 바 있는 탈북 예술인 K씨도 이와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2007년 남한으로 넘어 온 K씨는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탈북 예술인 가운데 유일하게 조선국립민족예술단 출신이다. 또 한 명의 조선국립민족예술단 출신 예술인은 수년 전 외국으로 이민을 갔다. K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예술단원과 북한 권력자 간 특수 관계를 설명했다. 지도부와 예술단 그리고 기쁨조
K씨는 “내가 조선국립민족예술단에 있을 때는 일부 예술단원이 주로 예술단 내부 간부들과 ‘그렇고 그런’ 관계를 유지했다”고 말했다. 예술단원과 외부 권력자의 관계에 대해서는 “주로 평양이나 지방 공연 이후 연회석상에서 해당 지역 권력자들이 마음에 드는 무용수 등 예술단원을 별도로 불러놓고 ‘시커먼 속’을 드러냈다”고 전했다. 예전에는 만수대예술단 단원이 주로 권력자들의 즐거움을 위해 움직였지만, 김정일을 위한 ‘기쁨조’가 만들어지면서 만수대예술단은 그 구실에서 벗어나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기쁨조는 어디까지나 1인자, 김정일만을 위한 것이었다. 1인자를 제외한 나머지 권력자도 자신만의 기쁨조가 필요했고, 그래서 눈을 돌린 대상이 예술단이었다. 개중에는 ‘김정일 기쁨조’에 감히 눈독을 들였다가 낭패를 보거나 총살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기쁨조는 군부대를 비롯해 여러 조직에 걸쳐 있었고, 결국 이들은 김정일만의 기쁨조일 뿐 아니라 해당 조직 권력자들의 기쁨조이기도 했다. 그들이 조직 내부의 기쁨조를 가만히 내버려둘 리 만무했던 것이다.
K씨는 “조선국립민족예술단이나 만수대예술단 등 중앙 예술단의 단장은 매우 비중 있는 자리”라며 “김정일이 직접 임명했다”고 말했다. 단장 임기는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고, 무슨 이유에선지 어느 날 갑자기 단장이 바뀌곤 했으며, 단장은 대부분 남성이었고, 주로 지휘자 등 예술적 재능이 있는 이가 맡았다는 게 K씨의 증언.
‘예술단 여성 단장 탈북’ 소식에 대해 K씨는 “내가 알기로 예술단 단장이 여성인 경우는 없었다”면서 “만일 여성이 단장이라면 매우 특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북한에서 여성이 많은 남성을 제치고 국가급 예술단 단장 자리에까지 올랐다는 것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고 뭔가 ‘대단한’ 능력이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K씨는 “만일 여성이 단장이라면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엄청난 비밀을 안고 있을 것”이라며 “북한 처지에서는 비밀 노출을 우려해 이런 여성의 외국 망명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으려 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조선국립민족예술단 단장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임명해왔다면 현재 단장은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임명했을 공산이 크다. ‘국가급 예술단 여성 단장 탈북’ 소식이 사실이라면 사라진 단장은 김정은 정권의 어떤 비밀을 안고 있을까. 지도부와 예술단 간 각종 설과 추측이 난무하는 북한이기에 더욱 궁금증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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