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가족병력 때문에 대학 불합격 시킨 건 차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2일 13시 45분


'가족 중에서 정신과 환자가 있는가?'

차모 씨(20)는 공군 A의료원에서 병력보고서를 작성하다가 이런 질문을 접했다. 국내 한 대학 항공운항학과 정시모집 서류전형에 합격한 뒤 신체검사를 받던 2012년 말이었다. 차 씨는 어머니가 조현증(정신분열증)으로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기에 병력보고서에 '있다'고 표기했다. 의료원이 어머니의 진단서를 요구해 제출했다. 얼마 후, 대학은 조현증은 유전확률이 높다는 이유로 불합격을 통보했다. 차 씨는 억울하단 생각에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해당 대학은 A의료원에 신체검사를 위탁하면서 공군의 '공중근무자' 기준을 적용하고 있었다. 인권위 조사에서 의료원 측은 "의학 서적에 따르면 부모 중 한 명이 조현증이 있을 경우 자녀도 병에 걸릴 위험률이 8~18%"라며 "조종사는 스트레스가 심하고, 천문학적인 비용과 장기간의 훈련을 필요로 하니 높은 신체기준을 적용한다"고 밝혔다.

인권위가 의료계에 자문을 구한 결과 부모 중 한 명이 조현증이 있을 경우 자녀의 유병률은 12%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다른 요인들이 모두 같은 조건이라는 가정 하에 추측된 것이었다. 유전적인 소인만으로 발병 위험률을 예측하는 것은 의학적 근거가 부족했다.

인권위는 항공운항학과 지원자에게 엄격한 신체검사 기준을 적용하는 건 수긍할 수 있지만, 판단기준은 본인의 현재 건강상태가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봤다. 또 부차적으로 가족의 병력 등을 고려할 때는 의학적 근거가 충분한 것에 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가족병력의 유전 가능성을 이유로 진정인을 불합격 시킨 건 차별 행위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의료원장에게는 관련 규정을 개정할 것을, 대학 총장에게는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