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다시 하면 호남에서 야당 후보가 쉽게 당선될 것 같으냐?’는 질문에 할 말이 없었다.”(야당 의원)
이른 추석 연휴에 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한가위 민심은 싸늘하기만 했다. 연휴 내내 쉬지 못하고 지역구를 돌며 민심 잡기에 나섰던 국회의원들은 공개적인 장소에서 인정사정 볼 것 없이 터져 나오는 비판 공세에 몸 둘 곳이 없었다고 한다.
○ “국회해산 하고 의원 다시 뽑자”
민심의 바로미터인 수도권 의원들의 위기감은 더욱 심각했다. 새누리당 이종훈 의원(성남 분당갑)은 “분당 할머니들이 나를 욕할 정도”라고 말문을 뗐다. 이 의원은 “야당 욕만 하던 주민들이 이제 ‘여당도 꼴 보기 싫다’고 욕한다”고 전하며 “세월호 정국을 빨리 해결하고 경제를 살리라는 주문이 많았다”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최원식 의원(인천 계양을)은 “의원들이 일을 왜 안 하느냐는 질타가 컸다”고 말했다. 최 의원은 “지역 주민들이 ‘세월호 특별법도 중요하지만 민생 현안도 챙겨야 하지 않느냐. 야당도 빨리 국회에 들어와서 일 좀 열심히 하라’는 질타를 많이 들었다”고 전했다. 새정치연합은 당론으로 세월호 특별법과 여타 민생법안의 처리를 연계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새정치연합 이언주 의원(경기 광명을)은 “세월호 특별법과 별개로 법안 처리 건수 0, 송광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추석상여금 수령 등 세 가지에 대한 주민들의 비판이 컸다”고 말했다.
○ 텃밭에서도 설 곳 없는 여야
정치권에 대한 부정적 민심은 여야의 전통적 텃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3선의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대구 동을)은 “방탄 국회와 식물국회를 언급하며 ‘국회 해체하라’ ‘의사당 폭파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면서 “국회의원들이 받은 추석 상여금의 정확한 액수를 이야기하면서 ‘뱉어내라’고 말하는 주민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호남 민심도 마찬가지였다. 새정치연합 주승용 의원(전남 여수을)은 “제대로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고 했다. 여수시장 출신의 3선 의원인 그는 “야당이 세월호 특별법에는 제대로 대응도 못하면서 당내 갈등만 심각하다고 혼이 많이 났다”며 “야당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비판이 이렇게 심각한 적이 없었다”고 전했다.
○ 추석 민심 ‘아전인수’ 해석에 ‘네 탓 공방’
지역 주민들의 따끔한 회초리가 정치권에 변화를 이끌어내는 효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여야는 듣고 싶은 이야기만 골라 들은 듯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놨다.
새누리당은 윤영석 원내대변인은 9일 브리핑에서 “진정한 민심은 민생과 경제를 살리라는 것”이라면서 “세월호 특별법은 논의하면서 민생경제 살리기 법안을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새정치연합 박수현 대변인은 “정부 여당은 가짜 민생법안을 내세워 자신들의 무능 탓에 벌어진 일을 세월호 특별법 때문에 발목 잡힌 것으로 매도하고 있다”며 “대통령과 여당은 추석 연휴기간 국민의 목소리를 마음으로 새겨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래도 내 탓보다는 네 탓이 크다’는 여야의 ‘아전인수’격 해석도 점입가경이다.
새누리당의 한 영남권 재선 의원은 “정치권을 욕하긴 하지만 확실히 야당 욕을 더 많이 한다”고 전하며 “세월호 특별법 2차 협상안도 통과시켜주지 말라는 주민들도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새정치연합 한 초선 의원은 “체포동의안 부결에 대한 민심의 분노가 상상보다 컸다”면서도 “방탄 국회가 없다는 새누리당의 주장이 거짓말이었음을 국민들이 알게 됐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 정치권의 동반 침몰 불가피
정치라는 배가 복원력을 상실하고 침몰하고 있는데도 정치권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7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발표한 9월 첫째 주 주간 집계에 따르면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은 19.5%를 기록하며 10%대로 떨어졌다. 3월 창당 이후 최저치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야당이 세월호법 합의과정에서 철저하게 배제되면서 야당의 존재 가치가 많이 떨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새누리당도 오십보백보다. 리서치 앤 리서치 배종찬 본부장은 “여당의 높은 지지율은 연령별로 이념 성향이 나뉘다 보니 반사적 이익을 누리는 것이지 새누리당의 경쟁력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정치가 본분을 다하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국정 최고책임자인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론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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