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朴대통령-김무성-김문수, 동지… 경쟁자… 얽히고설킨 ‘애증 10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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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7대 총선 그해엔…
2014년 당청관계 어디로…

여권에선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김 대표가 보수혁신위원장으로 발탁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의 얽히고설킨 10년 인연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10년 전 갈등과 긴장으로 얽혔던 세 사람의 다음 행보는 여권 내부의 역학 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 10년 전 시작된 애증관계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당시 한나라당은 불법 대선자금 사건의 여파 속에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을 쓴 채 2004년 17대 총선에 임하게 된다. 당시 최병렬 대표는 돌파구 마련을 위해 ‘박근혜 공천심사위원장’이라는 회심의 카드를 꺼낸다.

하지만 당시 사무총장이었던 이재오 의원은 “당의 얼굴로 약하다”며 강력 반발했다. 김문수 당시 대외인사영입위원장도 반대의 뜻을 밝혔다. 결국 ‘박근혜 카드’는 폐기됐고 김문수 의원이 공천심사위원장을 맡게 된다.

이후 공천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결정적 한 방을 날린 것은 당시 재선의 김무성 의원이었다. 김 의원은 2004년 2월 정치신인모임인 ‘한국의 길’ 소속 3명의 부산지역 공천에 강력 반발해 최 대표 면전에서 “지도부가 밀실 기획 사천(私薦)을 하고 있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사실상 김문수 공심위원장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이후 최 대표 거취를 놓고 당은 극심한 내홍에 빠졌고 결국 총선 한 달 전인 2004년 3월 최 대표는 퇴진했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 열린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의원은 당 대표가 됐고, ‘천막당사’를 열었다. 대통령 탄핵 후폭풍으로 50석도 어렵다던 총선에서 120석을 얻어 박근혜 대망론의 기반을 쌓았다.

이후에도 김 의원은 박근혜 대표와 사사건건 충돌한다. 2005년 행정도시특별법 원안 고수를 주장하는 박 대표에 맞서 “재논의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김 의원은 박 대표의 리더십에 대해 “박정희·육영수 후광이 절대적”이라며 “리더십이랄 게 있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 곳곳에 널린 갈등의 불씨

10년이 지난 지금 박 대표는 대통령이다. 김무성 의원은 여당의 대표가 됐다. 줄곧 비주류의 길을 걸어오던 김문수 위원장은 김 대표의 호출을 받고 8년 만에 당에 복귀했다.

김 대표는 잠재적 대권주자인 김 전 지사를 보수혁신위원장에 발탁한 데 대해 “지역이나 계파는 일절 고려하지 않았다. 사심 없이 결정했다”고 설명한다. 당 안팎에선 이 인선을 놓고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긴 묘수”라는 평가가 많다. 차기 대권을 놓고 정적(政敵)이 될 수도 있는 사람을 품는 대범한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보수혁신이 실패할 경우 져야 할 부담을 나눠 지는 절묘한 선택을 했다는 것.

현재 박 대통령과 김 대표는 긴장의 당청관계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 대표가 박 대통령과 껄끄러운 김 전 지사를 당 보수혁신위원장으로 앉힌 것을 놓고 “당청관계 파국을 불러올 수 있는 갈등의 씨앗을 뿌린 셈”이라고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김 대표와 김 위원장이 계속 손잡을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김 대표는 19일 기자들과 만나 혁신위의 권한에 대해 “무슨 일이든 전권을 맡길 순 없다. 중지를 모아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김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혁신위에 전권을 줘야 혁신할 수 있다”고 한 발언에 대해 선을 그은 것이다. 또 김 위원장이 지명직 최고위원을 원한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김 대표는 “전혀 그런 일이 없다”고 일축했다. 앞으로 혁신위 활동을 놓고 두 사람이 충돌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박근혜 대통령#김무성#김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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