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코리아 프로젝트 2년차/준비해야 하나 된다]
[통합교육 현장을 가다]<下>히브리어 교육기관 ‘Ulpan’
“낙오자는 없습니다. ‘울판’에서 중요한 건 성적이 아니라 적응입니다.”
이스라엘 히브리대 로스버그 인터내셔널스쿨에 개설된 히브리어 교육 프로그램인 울판의 교사로 25년간 근무해온 달리아 로스 씨(63)는 “언어는 사회 적응을 위해 가장 필요한 도구”라며 교육과정을 소개했다. 미국,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 다양한 지역에서 이주해온 유대인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언어라는 점에 착안한 프로그램이다. 이스라엘 정부가 세워진 1948년 이후 66년간 이어져 왔다. 로스 씨는 “남북한 언어의 뿌리가 하나라고 하지만 오랜 기간 분단됐기 때문에 사실상 다른 언어를 쓰고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며 “탈북자에게도 특화된 한국어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 낙오자 없는 철저한 맞춤 교육
로스버그 인터내셔널스쿨 울판에선 교사 20여 명이 학생의 수준 등에 따라 14주∼1년 단위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보통 10여 개의 반이 운영되며 교실마다 학생 20여 명이 수업을 듣는다.
이주민은 도착한 날 또는 바로 다음 날부터 울판 교육을 받는다. 현재 이스라엘의 울판은 주로 대학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대학 울판 외에도 키부츠(협동농장)나 정비공장 등에서 취업에 필요한 언어를 가르치는 울판과 연령대별로 필요한 수준의 언어를 교육하는 울판 등도 있다. 이주민의 특성에 맞게 세분해 운영하는 것이 장점이다. 대학 울판은 크게 예비 대학생들을 위한 메키나 과정과 대학원생을 위한 MA 과정, 여름학기 과정이나 해외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나뉜다.
기본 교재가 있긴 하지만 수업은 철저하게 대화 중심으로 이뤄진다. 로스 씨는 “교사들도 평소에 학생들에게 언어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 강조하면서 부담을 주지 않는다”며 “교육 방식도 학생의 등수를 매기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회에서 생활하는 데 무리가 없을 정도의 히브리어를 구사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한 학기에 통상 2회 치르는 시험에는 2번의 기회가 부여된다.
문법도 기본적인 수준만 배운다. 그 외에는 주로 그룹별 연극이나 토론, 춤, 노래, 히브리어 스피드 퀴즈 등 다양한 방식을 활용해 수강자들이 실생활에 응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교사와 함께 이스라엘 명소를 여행하며 방문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질문을 주고받는 교육도 병행한다. 성서학과 고대 중동학을 배우기 위해 3개월 전부터 울판 히브리어 수업을 듣고 있는 최승민 씨(30)는 “실제 말하고 쓰는 것 위주로 교육을 하기 때문에 1주일만 교육을 받아도 식당에서 음식을 시킬 수 있다”며 “학생들이 언어를 친숙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놀이처럼 수업을 한다”고 말했다.
로스 씨는 “수업을 소화하는 능력이 학생마다 다르기 때문에 뒤처지는 학생이 없도록 대학원 학생 출신의 보충교사를 둬 보완하고 있다”며 “교사들도 다양한 나라에서 온 학생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각 문화권 교육을 받는다. 몸이 불편한 학생들을 배려해 특수교육을 전공한 울판 교사도 따로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 동등한 관계인 울판의 교사와 학생
울판의 학급 구성은 사회통합의 관점에서 이뤄진다. 출신지 문화권이 몰리지 않도록 학급마다 다양한 지역 출신들을 골고루 배치한다. 통상 해외에서 이주해온 유대인(올림)들이 전체 학생의 70%가량을 차지한다. 나머지는 일반 유학생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올림에겐 장학금을 지원한다.
수업은 교사와 학생의 관계보다 친한 친구 같은 동등한 관계에서 진행된다. 수업 진도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면 학생이 원하는 시간에 교사와 면담해 보충수업을 결정하기도 한다. 학기가 끝나면 교사가 학생들을 집으로 초대해 파티를 열기도 한다. 약 3시간 동안 진행한 로스 씨와의 인터뷰 도중에도 학생 3명이 들어와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이들의 친밀도는 높아 보였다.
여름 계절학기를 듣기 위해 올 6월 미국에서 건너온 유대인 네이선 영 씨(20)는 “미국도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수업이 이뤄지지만 울판은 학생이 수업에 몰입할 수 있는 분위기까지 추가됐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 “남북한 학생을 한반에 참여시켜 이질감 해소해야…”
로스 씨는 “탈북자들이 한국에 입국하면 가장 먼저 언어에서 이질감을 느낄 것”이라며 “같은 한국어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표현이나 용어가 사실상 서로 다른 언어가 됐을 수 있기 때문에 적응 교육 과정에 특별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언어에 초점을 맞춘 교육이 없다면 한국 사회의 제도와 문화를 배워도 현실과 여전히 동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만약 내가 탈북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인 교사라면 남북한 학생들을 한반에 골고루 참여시켜 서로의 이질감을 해소할 수 있는 대화 중심의 교육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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