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고통에 신음하는 한국민 위해 자원” 쇼 대위 흉상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29일 12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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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에서 전사한 윌리엄 해밀턴 쇼 미국 해군 대위의 흉상 제막식이 29일 경남 창원시 해군사관학교 1층 도서관 로비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이기식 해사 교장(중장)과 리사 프란체티 주한 미해군사령관(준장) 등 양국군 관계자 130여 명이 참석했다.

1922년 6월 평양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던 윌리엄 얼 쇼 부부의 외아들로 태어난 쇼 대위는 평양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1943~1945년 미해군 초계어뢰정 부장(중위)으로 근무했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가했다. 전역한 뒤에는 해사의 전신인 '조선 해안경비대 사관학교'의 교관으로 생도들에게 영어와 함정 운용술을 가르치는 등 창군 시기 한국 해군 발전에 기여했다.

1950년 하버드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그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2의 조국'인 한국과 자신이 가르쳤던 생도들을 돕겠다는 의지로 해군 대위로 자원입대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당시 부모에게 "전쟁의 고통에 신음하는 한국인을 돕지 않고 전쟁이 끝난 뒤 선교사로 한국에 간다는 것은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는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과 서울 탈환 작전에 참가했다. 1950년 9월 22일 미 해병 7연대의 서울 진격에 앞서 서울 은평구 녹번리에서 후방정찰 임무를 수행하다 인민군이 쏜 총탄을 맞고 29세의 나이로 산화했다. 쇼 대위는 부모와 함께 서울 마포구 합정동 외국인 묘역에 잠들어 있다. 서울 은평구는 2010년 6월 조성한 은평평화공원에 쇼 대위를 추모하는 동상을 세웠다.

정부는 1956년 쇼 대위에게 금성 충무무공훈장을, 미국 정부는 은성훈장을 각각 추서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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