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아] 휴가도 혼자, 명절도 혼자…보고픈 조카도 안 만나는 朴대통령

  • 신동아
  • 입력 2014년 10월 12일 08시 58분


[동정민 기자의 여기는 청와대] 박 대통령의 친인척 관리

혈연, 지연, 학연 등 ‘관계’에 민감한 한국 사회에서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 친인척 문제는 늘 뜨거운 감자다. 역대 정권에서 대통령 친인척이 연루된 스캔들이 터지고 나면 어김없이 레임덕으로 이어졌다.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 문제로 국정 운영에 발목이 잡히지 않도록 철저하게 친인척을 관리한다고 한다.

9월6일 추석 연휴를 앞두고 채널A가 공개한 동영상이 청와대 안팎에서 큰 화제가 됐다. ‘유쾌한 삼남매’ 제목의 동영상에는 박근혜 대통령 삼남매의 50년 전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1964년 청와대에 들어온 첫해에 찍은 동영상에는 당시 13세이던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녹지원에서 팔굽혀펴기를 하는 모습과 7세이던 막내 지만 씨가 누나 위에 걸터앉거나 누나를 따라 팔굽혀펴기를 따라 하는 모습 등이 담겼다. 대통령 남매가 다정한 한때를 보내는 모습이 담긴 50년 전 동영상은 올 추석을 제각각 보낼 처지에 놓인 삼남매의 현재와 비교되면서 더욱 화제가 됐다.
유쾌한 삼남매

1979년 11월 21일 오전 9시 30분. 흐린 하늘에서 이따금 빗방울이 떨어지기도 한 이날,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세상을 뜬 지 한 달도 안 돼 박근혜 대통령과 동생 근령, 지만 씨는 함께 청와대를 나와 서울 신당동 집으로 향해야 했다. 당시 청와대 조리사였던 손성실 한식협회 고문은 ‘청와대를 떠나는 당일 아침, 박 대통령 삼남매는 밥상을 앞에 두고 누구도 수저를 뜨지 못했다’고 전했다. 청와대를 떠나며 근령 씨는 언니의 등에 얼굴을 파묻고 울기도 했다고 한다.

27세에 부모를 모두 잃고 가장이 된 박 대통령과 두 동생의 이후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근령 씨는 1982년 풍산그룹 창업자의 아들과 결혼했다가 6개월 만에 이혼하고, 1986년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1990년 귀국했다. 지만 씨는 1989년부터 히로뽕을 상습 복용한 혐의로 여러 차례 구속됐다.

삼남매의 관계도 격랑에 휘말렸다. 고(故) 육영수 여사가 1969년 설립한 육영재단 운영권을 둘러싸고 파국으로 치달았다. 1982년 박 대통령이 재단이사장을 맡은 이후 동생 근령, 지만 씨는 ‘최태민 목사가 재단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며 망친다’고 여겼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 근령, 지만 두 남매는 “저희 언니(박근혜)는 최태민 씨에게 철저히 속은 죄밖에 없습니다. 철저하게 속은 언니가 너무도 불쌍합니다. 대통령의 유족이라는 신분 때문에 어디에 하소연할 곳도 없습니다”라는 탄원서를 보냈다. 박 대통령은 “최 목사는 나를 도와준 사람으로 기념사업회와 육영재단을 좌지우지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내 나이가 몇 살인가”라며 억울함을 호소하면서도 결국 재단이사장에서 물러났다.

이후 근령 씨가 이사장에 취임했지만 이번에는 근령 씨와 지만 씨 간에 분란이 생겼다.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이던 2000년대 들어 근령-지만 씨 양측은 법적 분쟁을 넘어 폭력까지 동원하며 육영재단의 경영권을 두고 다퉜다. 삼남매가 육영재단을 둘러싸고 다툼을 벌이면서 이들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나빠졌다.
대통령의 ‘보물 1호’

박근혜 대통령이 추석인 9월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한, 청와대 경내에서 찍은 사진.
박근혜 대통령이 추석인 9월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한, 청와대 경내에서 찍은 사진.
육영재단 운영을 둘러싼 삼남매 갈등에도 박 대통령은 두 동생을 각별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근령 씨는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를 하던 2000년대 중반 당사까지 찾아와 박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다 두 남매의 관계는 근령 씨가 2008년 13세 연하인 신동욱 씨와 결혼한 것을 계기로 엉클어진다. 박 대통령은 두 사람의 결혼을 강하게 반대했다. 박 대통령 측근에 따르면, 2007년 초 근령 씨가 신씨와 약혼한 이후 계속해서 반대의 뜻을 전달했음에도 결국 혼인을 강행하자 박 대통령은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일로 근령 씨도 언니에게 섭섭한 마음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신씨는 2009년 2월부터 박 대통령의 미니홈피에 “동생 근령 씨가 육영재단 이사장에서 해임되는 데 박 대통령이 배후 역할을 했다”는 비방 글을 40여 차례 게시했고, 박 대통령은 그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신씨는 지만 씨가 자신을 살해하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등 삼남매 분란의 중심에 섰다. 이후 근령 씨는 박 대통령은 물론 지만 씨와도 소원해졌다.

이에 반해 박 대통령은 지만 씨가 2004년 16세 연하인 서향희 변호사와 결혼할 때에는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지만 씨 결혼식장에서 “이 자리에 돌아가신 부모님은 참석하실 수 없지만 저 하늘나라에서 더없이 기뻐하실 거라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며 기쁨을 나타냈다. 이듬해 조카 세현 군이 태어나면서 박 대통령과 지만 씨 부부는 급격하게 가까워졌다. 본인은 결혼을 하지 않았고 근령 씨도 아이가 없는 상황에서 아버지의 대를 이을 조카가 태어났기 때문. 박 대통령은 이후 늘 보물 1호로 세현 군을 꼽았다.

2011년 민주당에서는 지만 씨의 삼화저축은행 비리 연루 의혹을 끈질기게 제기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본인(동생)이 (신삼길 삼화저축은행 명예회장과) 아무런 사이가 아니라고 밝혔으면, 그걸로 다 정리된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유력 대권 후보가 검찰 수사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라는 또 다른 공격의 빌미가 되기도 했지만, 박 대통령은 그만큼 동생을 옹호하고 신뢰했다.

박 대통령은 대선 내내 동생 지만 씨 부부 때문에 마음을 졸여야 했다. 2011년 서씨가 30대의 나이에 변호사 30명을 고용할 정도로 법무법인 ‘새빛’의 규모를 키우자 여러 얘기가 나왔다. ‘만사올통’(모든 일은 올케를 통하면 된다) 이야기가 나온 것도 이때부터다. 박 대통령의 후광 없이 저렇게 로펌 규모를 키우는 건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나왔다. 차기 대선 행보에 본격 시동을 걸던 박 대통령에게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로펌 운영 과정에 서씨가 많은 빚을 지자 지만 씨조차 주변에 걱정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그즈음 한 측근이 박 대통령에게 “서 변호사에 대해 주변에서 걱정이 많다”고 얘기하자 박 대통령은 “아직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나요? 제가 이야기를 했는데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즉 박 대통령도 올케가 구설에 오르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썼다는 것. 결국 서 변호사는 로펌을 접고 대선 기간에는 아들과 함께 해외에 나가 있는 등 조용히 지냈다.
전경환, 김현철, 홍삼트리오

지난해 7월 박 대통령이 여름휴가를 보낸 경남 거제 저도에서 찍은 사진.
지난해 7월 박 대통령이 여름휴가를 보낸 경남 거제 저도에서 찍은 사진.
박 대통령은 두 동생 외에도 친척이 많다. 5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형제와 사촌, 이복남매를 포함해 1남 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난 육영수 여사의 형제와 사촌 등이 있다. 1979년 이전 청와대에 있을 때는 이들이 수시로 청와대로 들어와 함께 식사를 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를 나온 이후에도 이들 중 일부와는 계속 연락하며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고모와 삼촌 중에는 친소 관계가 경우에 따라 조금 달랐다. 박 전 대통령의 둘째 형인 박무희 씨의 손자 2명은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죽이고 자살한 것. 이들은 대통령과 전혀 교류가 없던 이들이라고 한다. 반면 가수 은지원 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누나인 박귀희 씨의 친손자로 대선 과정에서 함께 사진을 찍는 등 친분을 과시했다.

박 대통령의 한 지인은 “외가 쪽은 다들 결혼도 잘했고, 원래 집안에 돈도 좀 있어서 괜찮았는데 친가 쪽은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일이 많았다. 아버지 기일에도 오지 않던 사람들이 박 대통령이 유력한 정치인으로 떠오르자 하나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고 전했다.

역대 대통령 가족을 떠올리면 좋지 않은 기억이 많다. 형이나 아버지의 권세를 활용해 전횡을 저지르거나 비리로 재임 중 구속되는 등 불미스러운 일이 많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 때는 동생 전경환 씨가 구설에 많이 올랐다. 새마을운동협회 중앙본부 회장을 지낸 전씨는 결국 노태우 정부 때 구속되기도 했다.

윤여준 당시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영부인인 이순자 여사에게 ‘전 회장이 시중에서 말이 많다고 전달하며 그대로 두시면 안 된다’고 말했더니 이 여사가 화를 내더라. 당시 장남 전재국 씨에게도 ‘당신 삼촌이 심각한 문제인데, 아버지가 임기를 편하게 못 채울 수 있다’고 말하자 재국 씨는 ‘아버지는 삼촌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답했다”고 회고했다. 김운용 전 IOC(국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은 “전경환 씨가 대한태권도협회장을 맡으려고 문화체육부 장관을 앞세워 나를 쫓아내려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 씨도 정권 당시 실세였다. 현철 씨는 아버지의 대선 당선에 기여한 뒤 1996년 15대 총선 때 여론조사와 선거 전략을 주도하며 정치에 깊숙하게 개입했다. 그러나 정권 말기인 1997년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홍일·홍업·홍걸 세 아들의 이른바 ‘홍삼 게이트’로 아픔을 겪었다. 차남 홍업 씨는 이용호 게이트, 홍걸 씨는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되는 등 세 아들 가운데 두 명이 권력형 비리로 대통령 재임 시절 구속됐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 씨가 대통령 재임 시절 인사개입설로 구설에 올랐다. 노 전 대통령은 2004년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이 노씨에게 인사 청탁한 것에 대해 “시골에 있는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 주고 그런 일이 이제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형을 두둔했고 자존심이 상한 남 사장은 자살했다.

역대 대통령은 명절에 자식과 손자·손녀와 함께 청남대나 진해 해군기지, 저도 등지에서 망중한을 즐겼다. 가족을 아끼고 사랑했던 대통령들은 역설적이게도 가족들의 스캔들에 직격탄을 맞고 레임덕에 시달렸다. 역대 대통령 모두 친인척 스캔들로 힘들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동생들과 철저하게 거리를 뒀다. 지난해 2월 25일 대통령 취임식 이후 지만·근령 씨는 대통령과 관련된 행사에 일절 나타나지 않는다.
“인사 관여 불가능”

그럼에도 지난해 청와대는 한 주간지가 “박지만 씨가 ‘최태민 목사의 전 사위 정윤회 씨가 자신을 미행한다’고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항의를 했다”는 기사를 게재한 이후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언론 보도 이후 박지만 씨와 박 대통령의 오랜 보좌진 3인방(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이재만 총무비서관)의 갈등설이 흘러나왔다. 한바탕 난리를 치른 끝에 사실이 아닌 쪽으로 굳어졌지만 권력 암투라는 흥미로운 소재 속에 세간의 입방아는 커졌다.
게다가 군 관련 인사가 있을 때마다 육사 출신의 지만 씨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박 대통령을 잘 아는 사람들은 지만 씨가 인사에 관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들 말한다. 지만 씨는 한선교·윤상현 의원, 권영세 주중대사 등 정치인 친구가 많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지만 씨가 평소 정치인을 만나는 것조차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취임 후 한 지인이 지만 씨에게 인사를 부탁하자 “내가 누나한테 이야기하면, 될 것도 아예 안 될 텐데…”라며 거절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박 대통령 취임 이후 지만 씨는 조용히 사업에 전념하고 부인 서향희 씨도 올해 둘째 아들을 낳은 뒤 집에서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근령 씨는 박 대통령을 비방했다가 무고 혐의로 구속된 남편 신씨가 출소한 이후 그에 대한 의존도가 더 커졌다고 한다. 이들 부부는 사찰을 돌아다니며 강연도 하고 박정희·육영수 탄신제 등을 지내왔다고 한다. 신씨는 최근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든 공화당과 같은 이름의 당을 만들어 총재를 맡았다.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 씨가 40일간 단식한 이후 자신도 그렇게 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겠다며 단식 이벤트를 벌이는 등 정치적 활동을 계속한다.

대통령 친인척 관리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민정비서관실 내 특별감찰반이 담당한다. 당연히 지만, 근령 씨 등 직계 가족이 집중 관리대상이다. 청와대는 상당히 강도 높은 관리를 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지만, 근령 씨도 사적으로는 “너무 감찰을 세게 하는 것 아니냐. 특별감찰관까지 생기면 진짜 힘들 것 같다”고 볼멘소리를 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서향희 씨는 올해 1월 31일 설 연휴에 둘째 아들을 출산했다. 첫째를 낳은 지 9년 만이다. 박 대통령은 전화로 지만 씨 내외에게 축하 인사를 전했다. 전화통화에서 “조만간 한 번 가겠다”고 말했지만 아직까지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이번 추석 연휴를 관저에서 보낸 것에 대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박 대통령은 둘째 조카를 엄청나게 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참고 있다. 만약에 추석 명절에 박 대통령이 지만 씨 부부를 관저로 불러 둘째 조카를 만났다고 치자. 그러잖아도 뚜렷한 근거도 없이 ‘만만회’다 뭐다 이야기가 많은데 말도 안 되는 의혹이 제기되지 않겠나.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도 매지 마라’는 속담처럼 그런 불씨를 만들고 싶어 하지 않을 뿐이다.”

동정민 채널A 청와대 출입기자 ditto@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2014년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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