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전단 ‘南南 충돌’]
고위접촉 볼모삼은 北 삐라 항의에… 정부 “상황따라 경찰 조치” 어정쩡
법으로 막으면 ‘심리전 후퇴’ 우려… 한시적 통제 등 유연한 접근 필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극심한 이념 갈등을 겪었던 해방 정국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25일 경기 파주시 임진각 일대를 다녀온 한 시민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이같이 말했다. ‘막으려는 자’와 ‘뿌리려는 자’ 간에 맞고함이 오가고, 계란이 날아다닌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남남(南南) 갈등’을 노린 북한의 의도에 말려든 한국 사회 갈등의 현주소가 그대로 투영됐다.
그럼에도 정부의 태도는 여전히 모호할 뿐이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24일 국정감사에서 대북전단 문제에 대해 “남북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도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 문제여서 (전단 살포를) 막을 수는 없다”고 대답한 게 사실상 전부다. 현실은 대북전단 살포의 득(得)과 국론 분열의 실(失) 사이에서 정부의 분명한 태도 표명을 요구하지만 정작 충돌의 현장에 ‘대한민국 정부’는 없었다.
대북전단 살포 충돌 직후 정부가 ‘상황에 따라 경찰에게 맡긴다’는 어정쩡한 태도만 보이기보다는 공개적으로 전단 살포를 강행하는 단체들에 대해 선을 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과거 대북 전단을 북한에 보냈거나 현재도 비공개로 보내고 있는 인사들까지도 일부 보수단체들의 ‘부적절한 공개 전단 날리기’를 비판했다.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는 26일 “남풍이 불지 않으면 대북 전단 풍선은 휴전선을 넘어가지 못한다. 바람 방향도 고려하지 않고 특정한 날짜를 공개적으로 미리 예고하는 것은 실효성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지금은 대북전단 살포보다 남북 고위급 접촉의 불씨를 살려 교류협력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기적인 남북 관계도 고려한다면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 중지에 앞장서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 소식통은 “일각에서는 법을 동원해 대북 전단 살포를 막으라고 하지만 대북 전단은 남북 관계에 따라 필요한 상황도 있다”고 말했다. 현행법으로 완전히 대북 전단 살포를 차단했다가 북한이 대남 비방과 위협으로 나올 때 방침을 되돌리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남북 관계에서 북한의 변화를 촉구할 수 있는 유용한 카드를 그냥 버려선 안 된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문한다. 다만 ‘된다, 안 된다’ 식의 이분법적 방식보다는 한시적으로 대북 전단 살포를 통제하는 등 유연하고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 군부대 지역에 떨어지는 대북 전단들은 대북 심리전 차원에서 상당한 영향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전단 살포 시기를 그 시점에 주요한 대북 관계를 고려해 결정하는 것이 보다 전략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5일 ‘남조선 각계 반공화국 삐라 살포 망동에 항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금강산기업인협의회, 남북경협경제인총연합회, 경기도 파주시 주민 등이 대북전단의 살포를 규탄하거나 저지하고 있다”며 남남갈등을 거듭 부추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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