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하려 하면 말 잘라… “네, 네”만 하다 끝난 1분26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7일 03시 00분


[달라지지 않은 구태 국감]
국정감사 27일 마무리… 일반증인 20명 답변시간 직접 재보니

국회가 국정감사에 증인들을 불러놓고 질의도 하지 않는 구태가 올해도 어김없이 반복됐다. 20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감에 출석한 도성환 홈플러스 사장, 최태경 한성자동차 전무, 이원준 롯데쇼핑 사장(앞줄 왼쪽부터) 등 증인들이 의원들의 질의를 기다리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 새정치민주연합 김영환 의원은 “백화점이 업체에서 물건을 공급받을 때 특약매입(일종의 외상거래)을 줄이고 직접매입을 해야 한다”며 이원준 롯데쇼핑 사장에게 물었다.

“특약매입 줄여 나가야겠죠? 그렇겠죠?”(김 의원) “네.”(이 사장)

“줄여나갈 용의가 있습니까?”(김 의원) “네. 저….”(이 사장) “앉아주십시오.”(김 의원)

이 사장이 뭔가를 설명하려 했지만 김 의원은 말을 끊었고 질문을 멈췄다. 이날 이 사장은 4명의 의원에게 15차례 질문을 받았지만 답변한 시간은 모두 1분 26초에 불과했다. 》

●허탈한 19초… 서면으로 될 내용을… 강원도서 서울 와 설명

16일 산업통상자원위원회의 한국전력 등에 대한 국감에서 새정치연합 박완주 의원은 총 9분 41초의 질의시간에 6명의 증인을 상대로 쫓기듯이 질문을 퍼부었다. 이도식 GS동해전력 대표이사는 이날 박 의원 외에 다른 의원에게서는 질문을 받지 않았다. 강원 동해시에 회사가 있는 이 사장은 서울 여의도까지 와서 단 19초간 답변하고 돌아가느라 하루를 허비했다.

질문 중 대부분은 서면질의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한 내용이었다. 박 의원이 이 대표에게 “GS EPS와 GS ENR와의 관계가 뭐냐”라고 물었고, 이 대표는 “별도 법인이다. 동해전력은 ENR에 들어가 있다”고 답했다. 이어 “(동해전력이) GS그룹 계열사인 것은 맞느냐”고 질문했고 “그렇다”고 답했다.

정무위 국감에 출석한 장봉섭 현대아산 건설본부장은 부당한 하도급 대금 관련 질문에 “현재 공정위 조사가 진행 중이고 성실하게 임하고 결과대로 적절히 조치하겠다”고만 답변했다. 장 본부장의 답변시간은 18초였다.

●황당한 0초… 불러놓고 “질의할 시간 없어”… 4시간반 허탕

짧게라도 답변 기회를 얻은 증인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새정치연합 안민석 의원이 8일 국감에 증인으로 부른 강현진 서울 맹학교 교장은 증인석에서 네 시간 반 정도 앉아 있다가 그냥 돌아갔다. 같은 상임위 소속 새누리당 이상일 의원은 한 라디오에서 “(증인으로) 채택을 했는데 본인(안 의원)이 모르고 있더라.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안 의원 측은 “증인으로 채택된 것은 알고 있었는데 순간 착각했다”며 “질의시간이 한정돼 있어서 질의를 못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20일 정무위 국감에 증인으로 나온 최태경 한성자동차 전무도 말 한마디 못하고 귀가했다. 최 전무를 증인으로 신청한 새누리당 정우택 의원(정무위원장) 측은 “불법영업 등에 대해 주의를 주려고 증인 신청을 했다”며 “상임위원장이다 보니 관례대로 다른 의원에게 부탁해서 질문을 하려고 했는데 모두 질의시간에 쫓겨 질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면박 2분51초…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호통 들어

증인들에게 의원이 호통을 치거나 윽박지르는 모습도 예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13일 산업통상자원위원회의 산업통상자원부에 대한 국감에서는 삼척원자력발전소 찬반 주민투표와 관련해 새누리당 이진복 의원과 일반증인으로 출석한 김양호 삼척시장 간에 설전이 벌어졌다.

“지금, 지금 시장님이 하는 일(주민투표)이 옳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삼척시가 주민들 간의 대결 모드로 전환된다면….”(이 의원)

“그렇지 않습니다. 결과에 아마 승복할 겁니다.”(김 시장)

“그건 시장님 생각이죠. 그 점도 모르고 질문했겠습니까.”(이 의원)

“주민투표를 안 해서 4년간 갈등이 왔습니다.”(김 시장)

“제가 드리고 싶은…(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씀 좀 삼가세요.”(이 의원)

“아니,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 말씀드렸습니다.”(김 시장)

“알았다니까요. 제가 좀 질의 좀 하자고요.”(이 의원)

“죄송합니다.”(김 시장)

“(큰소리로) 그 정도 내용 모르고 질의 드리는 거 아니잖아요.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습니까.”(이 의원)

이날 김 시장의 답변시간은 총 2분 51초. 하지만 이 답변을 위해 이 시장은 약 12시간을 허비했다. 김 시장은 26일 통화에서 “당일 삼척에서 낮 12시 반 정도에 출발해서 자정이 다 돼서 들어갔다”며 “답변 기회도 별로 안 주고 답변 중간에 계속 끊어서 오히려 답변 내용을 들으려면 서면질의가 훨씬 나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택동 will71@donga.com·배혜림·이현수 기자
#국정감사#주민투표#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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