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비례대표, 그들은 누구인가]
15∼19대 국회 비례대표 의원 ‘출신’ 살펴보니
《 국회의 전문성과 다양성을 보완하는 취지로 1963년 도입된 비례대표 제도가 50년 고개를 넘었다. 독재정권 시절엔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했지만 민주화가 정착된 뒤엔 인재의 ‘등용문’ 역할을 톡톡히 했다. 현재 여야의 중진급, 간판급 인사 중에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정치권에 입문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19대 국회 들어 비례대표 의원들이 각종 설화(舌禍)에 휘말리고 공천헌금이나 경선 비리가 터져 나오면서 비례대표 제도란 본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또 제1 야당의 경우엔 전문성이나 직능대표보다는 ‘정체성’을 공천 기준으로 내세우면서 비례대표 의원들이 막말 등 여러 구설과 정치 수준 하향화(下向化)의 주역이 되고 있다는 비판도 많다. 지난달 발생한 ‘대리기사 폭행 사건’에 연루된 새정치민주연합 김현 의원도 비례대표 의원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15∼19대 국회 비례대표 의원들의 ‘출신’을 토대로 어떤 사람이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는지 흐름을 분석해봤다. 》
○ YS, DJ 비례대표 공천 어떻게
15대 국회는 김영삼(YS) 전 대통령, 16대 국회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서 당 총재직을 겸임하면서 막강한 공천권을 행사했다.
15대 총선 때 YS는 비례대표 1번에 이회창 전 국무총리를 전격 발탁한다. 안보정책조정권을 놓고 갈등을 벌이다 떠난 이 전 총리를 다시 껴안은 것. ‘대쪽 총리’로 불리던 이 전 총리 영입은 “과감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2, 3번에도 이홍구 전 국무총리와 이만섭 전 국회의장을 배치했다.
DJ는 비례대표 1번으로 여성이자 교육계 출신인 정희경 청강학원 이사장을 발탁했다. 1995년 정계 복귀 뒤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의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파격’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이 덕분에 15대 총선은 ‘개혁 공천’이 이뤄졌다는 평가가 많다. 비례대표로 수혈돼 당의 간판급 인사가 된 인사도 많다. 새정치연합 김한길 전 공동대표는 15대 총선 때 DJ가 총재로 있던 새정치국민회의의 비례대표 6번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새누리당 대표 등을 지낸 뒤 교육부 장관으로 발탁된 황우여 의원도 15대 총선 때 여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DJ는 집권 후 대통령 겸 당 총재로서 공천권을 행사한 16대 총선에서 이만섭 전 국회의장 등 옛 여권 인사, 군 출신, 각 직능대표를 비례대표 후보로 배치했다. 권노갑 상임고문은 “비례대표 공천을 통해 과거와의 화해, 국민 통합을 시도하는 한편 안정감을 보여주려 했다”고 전했다.
○ 17, 18대 국회 비례대표 의원들은
17대 총선은 이른바 3김(金·YS-DJ-JP)의 그늘에서 벗어나 치러진 첫 선거였다. 유권자들이 지지 후보와 정당에 각각 1인 2표의 투표를 하고 득표 비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고, 비례대표 후보에 여성을 절반 이상 추천하는 현재의 비례대표제가 정착된 것도 이때부터다. 특히 주요 정당은 여성을 1, 3, 5… 등 홀수 순번으로 우선 배치했다. 남성 정치 지망생들 사이에선 “국회의원이 되려면 성전환을 하는 것이 가장 빠를 것 같다”는 농담이 나오기도 했다. 나경원(새누리당) 박영선 의원(새정치연합)이 17대 총선 때 여성 비례대표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한 대표적인 인사이다.
‘양극화’가 사회 문제로 대두한 18대 총선(2008년 4월) 때는 사회 소수자를 대표하거나 복지, 여성문제 전문가들의 진입이 두드러졌다.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 비례대표 1번에는 ‘부스러기사랑 나눔회’ 대표였던 강명순, 최영희 전 국가청소년위원회 위원장이 배치됐다.
○ ‘최악’ 딱지 붙은 19대 국회 비례대표 의원들
대선을 8개월 앞두고 ‘대선 전초전’으로 치러진 19대 총선(2012년 4월) 때 여당인 새누리당은 ‘경제민주화’를, 제1 야당인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은 ‘정체성 바로 세우기’를 전면에 내걸었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과 대선공약 작업을 함께한 안종범 의원 등 경제 전문가들을 중점 배치했다. 탈북자와 다문화를 상징하는 차원에서 조명철 이자스민 의원도 금배지를 달았다. 민주당은 한명숙 당시 대표와 이해찬 문재인 의원 등 친노(친노무현) 사단이 비례대표 공천을 주도하면서 김광진 김기식 김현 배재정 은수미 장하나 최민희 임수경 의원 등 친노·강경파 의원이 대거 유입됐다. 당시 민주당 안팎에서는 “당 정체성이 대체 뭐냐”란 반발과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김현 의원은 대리기사 폭행 사건 과정에서 “내가 누군지 알아” 등 갑(甲)질로 물의를 빚었지만 사건 발생(9월 17일) 한 달이 훨씬 지난 29일 현재까지도 사과를 한 적이 없다. ‘청년비례대표’란 명분으로 국회의원이 된 김광진 장하나 의원은 갖은 막말로 구설에 올라 있다. 백선엽 장군을 “민족의 반역자”라고 지칭하는가(김) 하면 박 대통령을 향해 “국가의 원수(怨讐)”라고 해(장) 국회 안팎에서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동아일보가 23∼28일 19대 비례대표 의원들이 제출한 법안을 분석해본 결과 새누리당 비례대표 의원(27명) 중 자신의 전문 분야와 관련해 제출한 법안은 52.6%(984건 중 518건)였다. 새정치연합 비례대표 의원(21명)은 제출 법안 918건 중 30.2%(278건)가량만 전문 분야와 관련된 것으로 확인됐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비례대표의 취지는 각 분야 전문가들을 영입해 입법을 통한 국민의 삶의 질 개선을 꾀하라는 것”이라며 “전면적인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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