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지(延吉)에서 일자리를 구해주겠다는 브로커의 말만 믿고 1998년 탈북을 결심했습네다. 그런데 나중에 중국 와서 보니까 그 사람들이 팔아먹자고 했던 말이지 직업을 소개해준다는 말은 없더란 말입네다.”
중국 지린(吉林) 성에서 지난달 만난 탈북 여성 박순희(가명·41) 씨는 채널A 특별취재팀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유를 찾아 국경을 건넌 탈북 여성 상당수는 중국에서 인신매매를 경험한다. 말을 듣지 않으면 공안에게 넘기겠다거나 중국 국경을 넘는 과정에서 들었던 비용을 당장 내놓으라는 브로커의 협박에 어쩔 수 없이 자유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부 탈북 여성들은 자신이 팔려 가는지도 모르고 넘겨지기도 한다.
○ 최근까지 수백만 원에 팔려
인신매매된 탈북 여성의 몸값은 철저히 경제적 논리에 따라 정해진다. 수요가 많으면 값이 올라가고 공급이 많으면 그 가격은 훨씬 낮아지는 것이다.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북-중 접경지대를 주무대로 활동하는 탈북 브로커들이다.
브로커들은 대부분 조선족이지만 탈북자도 있다. 사단법인 북한인권정보센터가 인신매매 경험이 있는 탈북자 90명을 대상으로 인신매매범의 국적을 조사한 결과 조선족이 55.8%, 중국 한족이 29.5%였다. 북한 사람이라는 응답도 14.7%나 됐다.
인신매매 브로커들은 중국 농촌 지역에서 결혼 상대를 찾는다는 연락을 받으면 북한에서 여성을 탈출시켜 팔아넘기는 방식으로 활동한다. 한국에서 채널A 취재팀이 만난 전직 인신매매 브로커 김동훈(가명·탈북자) 씨는 “브로커들 대부분이 점조직으로 활동하며 알음알음 이어지기 때문에 외부로 노출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 내륙지역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중개 전문 브로커들을 통해 가격 흥정에 들어간다”고 덧붙였다.
김 씨에 따르면 탈북 여성의 몸값은 우리 돈으로 수십만 원부터 많게는 수백만 원 수준이다. 최근에는 20대면서 외모가 예쁜 여성은 2만 위안(약 360만 원)부터 많게는 3만 위안(약 540만 원) 정도에 팔린다. 김 씨는 “2000년대 중반 북한 주민들이 대량으로 두만강을 건너던 시기에는 탈북 여성들이 너무 많아 20대 여성도 3000위안(약 54만 원)에도 팔기 힘들었는데 요즘은 국경 감시가 강화돼 탈북하려는 여성을 구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인신매매되는 탈북 여성 중에는 자신이 팔려 간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1998년 탈북해 인신매매된 김옥순(가명·51) 씨는 “중국말도 모르니까 브로커가 데리고 가면 가는 대로 그저 무서워서 끌려갔다”고 말했다. 장미옥(가명·48) 씨도 “먼저 탈북한 북한 사람이 국경을 넘는 것을 도와줘서 ‘이제 다 됐구나’ 했는데 중국에 온 뒤엔 곧바로 중국 남성에게 넘겨졌다”며 “아무 데도 못 가고 무서워서 ‘나는 이제 다됐구나(끝났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탈북 여성들은 대부분 북한 국경에 인접한 중국 랴오닝(遼寧) 성과 헤이룽장(黑龍江) 성, 지린 성으로 팔려 간다. 북한인권정보센터 조사 결과 인신매매 경험 탈북자의 80%가 동북 3성으로 팔려갔다. 또 73.3%는 농촌 지역으로 팔려갔다고 답했다. 중국은 전통적인 남아선호사상과 1979년부터 실시된 1가구 1자녀 정책으로 농촌 지역에선 남녀의 성비 차가 심각하다. 한 탈북 브로커는 “농촌 남성이나 소수민족 출신처럼 결혼 상대자를 찾기 힘든 중국인들이 탈북 여성을 사려고 하는 주 고객층”이라고 말했다. ○ 노래방·화상채팅으로 빠지기도
중국 내 인신매매 브로커들은 탈북 여성들의 불안정한 신분을 이용해 유흥업소에 팔아넘기기도 한다.
팔려온 탈북 여성들은 북한 내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몸을 팔아 힘겹게 돈을 벌어야 하는 처지다. 조선족이 많이 살고 있는 단둥(丹東)이나 선양(瀋陽)에서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거나 음란 화상채팅 업체에 팔려가기도 한다.
한 탈북 브로커는 “한국 남성들을 대상으로 화상채팅을 하며 돈을 버는 탈북 여성들이 있지만 대부분을 업주와 브로커에게 뜯기기 때문에 다시 불법적인 일을 해 돈을 벌어야 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반복된다”고 말했다. 일부 탈북 여성들은 유흥업소에 취직했다가 손님의 돈을 훔쳐 달아나는 등 범죄도 서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취재팀이 중국 옌지의 노래방에서 만난 조선족 여성은 “일부 북한 사람들은 손버릇이 좋지 않았다. 일하다가 지갑의 돈을 모두 훔쳐 달아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탈북 여성들이 중국에서 인신매매에 고통 받고 있지만 중국 정부는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여전히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강제 소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에서 인신매매 피해를 겪고 있는 탈북 여성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외교적 차원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중국에 들어온 탈북 여성에 대해 우리 정부가 한국인여행증명서 등 한국인임을 증명하는 서류를 발급해 탈북 브로커의 도움 없이도 한국으로 쉽게 올 수 있도록 하는 등 국제법과 인도주의적인 관점에 따라 전향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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