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문건’ 파문]靑, 朴경정 작성문건 檢 전달
靑비서관 비리-행정관 원대복귀 등… 특정언론에 통째 유출돼 보도 정황
문건에 검은색 가려졌던 부분 확인… 前육영재단 임원 처조카 실명 거론
“정씨에 부탁하려면 7억” 발언 담겨… 靑 “이정현 비난 등 말도 안돼”
귀가하는 朴경정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한 박관천 경정이 19시간가량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은 뒤 5일 오전 4시 반경 귀가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박관천 경정(48)이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으로 파견근무를 할 때 사용하던 컴퓨터에서 나온 ‘정윤회 동향’ 문건은 한두 건이 아니었다. 각 문건의 주요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제목이 몇 번씩 바뀌어 달렸고, 문장의 표현과 단어 등도 문건마다 조금씩 달라졌다. 여러 버전의 정윤회 문건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청와대가 검찰에 제출한 ‘박 경정 문건 리스트’에는 정윤회 동향 문건 외에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과 부인 서향희 씨의 동향과 관련된 문건 3건도 섞여 있었다. 정 씨 관련 문건에는 정 씨의 국정 개입 의혹과 같은 비위 내용을 담은 반면, 박 회장 동향 문건들은 대부분 ‘박 회장과 관련된 어떠한 소문들이 나돌고 있는데 알아보니 누군가가 박 회장을 팔고 다닌 것이었다’라는 등 박 회장을 둘러싼 의혹을 벗겨주는 식의 우호적인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고 한다. 박 경정과 그의 직속상관인 조응천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이 이른바 ‘박지만 라인’으로 분류됐던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이는 대목이다.
박 회장은 4일 EG 서울사무소에는 출근했으나 저녁에 서울 강남구 청담동 자택으로 귀가하지 않았다. 박 회장 측은 5일 “박 회장은 자택에 없다. 가족들과 함께 서울 근교로 떠났다”고 전했다.
또 검찰은 박 경정이 작성한 문건들의 내용이 세계일보에 몇 달 간격을 두고 줄줄이 보도된 것도 파악했다. 지난달 28일 보도된 ‘정윤회 동향’ 문건은 물론이고 7월 ‘최모 청와대 비서관 비리’, 4월 ‘비리 혐의 청와대 행정관들의 징계 없는 원대복귀’ 기사는 모두 박 경정이 작성한 보고서 리스트에 들어가 있는 내용이었다. 이들 기사는 박 경정이 작성한 보고서 내용을 보지 않았으면 알 수 없는 것이 많았고, 검찰에서 무혐의로 결론 난 최 전 비서관 비리 의혹의 경우처럼 후속 조치 내용은 모른 채 보고서 내용만 기사에 담은 흔적도 포착됐다. 이 때문에 검찰은 박 경정이 작성한 문서들이 뭉텅이로 세계일보로 유출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박 경정이 작성한 문건을 버전별로 분석해 유출 시기와 경로를 확인할 방침이다.
○ “이정현 수석 비난 내용, 신빙성 낮아”
세계일보가 지난달 28일 공개한 ‘정윤회 동향’ 문건에서 검은색으로 가려져 있던 부분도 확인됐다. 박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지목된 정 씨가 이재만 대통령총무비서관 등 이른바 ‘십상시(十常侍)’와의 회동에서 ‘청와대의 이정현 (당시) 홍보수석비서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비리나 문제점을 파헤쳐서 빨리 몰아내라’고 말했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 부분이 오히려 문건 내용의 신빙성을 떨어뜨린다고 보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문건에 십상시로 언급된 8명이 모인 자리에서 이 전 수석을 강하게 비난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8명 중 한 명인 A 행정관은 이 전 수석의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으로 그가 이 얘기를 들었다면 곧바로 이 전 수석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고, 나머지 사람들도 이 전 수석과 오랜 기간 함께 일해 온 사이라는 것.
이 전 수석은 5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격앙된 목소리로 “나는 정 씨를 알지도 못하고, 그쪽과 관계를 맺은 일도 없는데 왜 내 이름이 거기에 그런 식으로 들어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문건 첫 페이지의 검게 가려진 부분은 박 대통령이 한때 이사장을 지냈던 육영재단 임원 S 씨의 처조카 김모 씨의 실명이 담겨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 씨가 정 씨와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요즘 정 씨를 만나 부탁을 하려면 7억 원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고 다닌다는 부분이다. S 씨의 아들은 본보 기자와 만나 “김 씨가 친척 모임에 간혹 나타나지만 가까운 인척관계는 아니다”라며 “아버지로부터 김 씨가 로비스트라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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