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대응만 잘했더라면… 위기관리능력, 있습니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6일 03시 00분




《 조직의 실력은 위기 상황에서 나온다. 국정 최고 컨트롤타워인 청와대는 두 장짜리 ‘정윤회 동향’ 문건 하나에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문건 유출을 알고도 8개월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결과다. 사건이 불거진 이후 수습 과정도 낙제점 수준이다. 대한항공의 위기 대응 능력도 바닥을 드러냈다. 땅콩 하나로 수십 년간 쌓아온 기업 이미지가 한 방에 날아갔다. 위기 앞에 한없이 작아진 청와대와 대한항공은 여러 공통점이 있다. △폐쇄적 의사결정 구조 △‘오너십’에 갇힌 집단 대응능력 부재 △위기를 기회로 바꾸지 못한 안이한 인식 등이 그것이다. 》  

8개월간 수수방관 ‘무대책 청와대’
문건유출 알고도 방치, 의혹 키워… 부실감찰로 권력암투 논란 불지펴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정윤회 씨 동향 문건이 세계일보에 처음 보도된 것은 지난달 28일이다. 청와대의 첫 반응은 “찌라시(사설 정보지)에 나온 풍문을 모은 글로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청와대가 움직일수록 문제는 꼬였다. 문건 유출 사실을 안 이후 대처 과정은 의문투성이다. 위기 상황에서 누구 한 명 나서는 사람도 없다. 청와대가 위기대응 전략도, 실행할 사람도 없는 무기력증에 빠지면서 박근혜 정부의 지지층조차 흔들리고 있다.

‘정윤회 동향’ 문건이 보도되자 청와대는 내부 감찰을 벌였다. 하지만 실체를 밝히기보다는 박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과 가까운 조응천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 그룹을 타깃으로 삼아 오히려 권력암투 논란에 불을 지폈다.

박 대통령은 문건 유출을 ‘국기문란 행위’라고 규정했지만 정작 청와대는 문건 유출 사실을 안 뒤에도 8개월 동안 손을 놓고 있었다. 4월과 6월, 7월 등 최소 세 차례나 문건 유출 사실을 알고 수습할 기회가 있었지만 유출자를 찾아내지도, 유출 문건을 회수하지도 못했다. 그때마다 사건 관련자들이 협조하지 않았다는 변명만 댔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고장 난 청와대 운영 시스템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덮으려다 화키운 ‘무리수 대한항공’
‘땅콩리턴’ 조직논리에 갇혀 오판… 윗사람 보호 급급, 국민 공분 불러


한진그룹 오너 3세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일탈 정도로 끝났을 미풍은 일주일 만에 한국 사회를 뒤흔든 메가톤급 폭풍이 됐다.

여기까지 온 데에는 대한항공이 사태 수습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탓이 크다. 국민이 조 전 부사장의 ‘갑의 횡포’에 분노할 때 대한항공은 ‘서비스의 질을 높이겠다’는 엉뚱한 사과를 내놨다. 외부가 아닌 자신들의 시각에 매몰되면서 국민이 분노하는 사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태를 수습하는 의사결정 구조도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사과문 발표와 보직 사퇴 등의 대책이 잇따랐지만 회사의 입인 홍보팀마저 정확한 내용을 알지 못했다. 오너를 둘러싼 일부 가신 그룹이 결정한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는 폐쇄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가진 탓이다.

이번 사태가 오너와 관련된 직접적인 문제이다 보니 통상적인 대응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동정론도 나온다. 오너에게 처음부터 ‘사과를 해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말할 수 있는 임원들이 대한항공뿐 아니라 오너가 전권을 가진 일반적인 한국 기업에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대한항공 역시 회사와 소비자, 시민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게 아니라 ‘윗사람’을 보호하는 데 급급하면서 현재의 상황까지 오게 됐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는 “대한항공은 오너의 눈과 귀를 가리는 폐쇄적 의사결정 구조를 바꿔야 한다”며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민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수수방관#무대책#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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