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반대’ 김이수 재판관도 “이석기 RO발언 납득못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20일 03시 00분


[통진당 해산]
“자유의 敵에게는 자유가 없다”… 헌재 재판관 9명 의견 모으기까지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19일 ‘통합진보당 해산과 의원직 상실’ 결정의 주문을 읽기 직전에 “이 결정이 이념 논쟁을 종식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사무사 무불경(思無邪 毋不敬)의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소회를 밝혔다. ‘사무사 무불경’은 논어 위정편(爲政篇)에서 따온 구절로 ‘간사함 없이 진중하게 행하라’는 뜻이다. 이번 정당해산 심판 사건을 사심 없이 처리했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날 ‘8(해산) 대 1(반대)’이란 압도적 표차의 결정은 헌재 재판관의 구성과 성향으로 볼 때 어느정도 예견된 결과였다. 헌재 재판관은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3명씩 지명권을 갖지만 야당 몫의 재판관 1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사실상 정부 여당의 영향권 안에 있다.

헌재 재판관 중 최선임인 박 소장은 대검찰청 공안부장 출신으로 2011년 2월 이명박 대통령의 추천을 받아 재판관이 됐고 박근혜 정부 들어 소장으로 지명됐다. 박 소장은 재판관들의 의견을 모으는 평의(評議) 과정에서 다른 재판관 설득에 앞장서며 선고 전날까지 밤새워 발표문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맨 아래 후임 재판관부터 역순으로 의견을 밝히는 평의의 특성상 인용 의견이 정족수(6명)에 못 미칠 때는 최후 발언권을 가진 박 소장이 ‘캐스팅보트(결정권)’를 쥘 것으로 예상됐지만 조용호 서기석 강일원 안창호 김창종 이진성 등 6명의 후임 재판관이 차례로 찬성표를 던져 부담을 덜게 됐다. 차차선임인 김이수 재판관이 처음 반대 의견을 냈지만 더이상 동조자는 없었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의 추천을 받아 비교적 진보적 성향으로 분류되던 주심 이정미 재판관이 박 소장이 주도한 다수 의견에 동조했기 때문. 이 주심 재판관은 공개변론 때 증인으로 출석한 통진당 간부에게 “이석기 의원이 입당한 지 2, 3개월 만에 비례대표 경선에서 남성 후보 1순위가 된 배경이 무엇이냐”면서 통진당 활동의 민주성에 의구심을 드러내는 등 인용 가능성이 조심스레 점쳐져 왔다.

유일한 야당(옛 민주통합당) 추천자인 김 재판관은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나온 고사를 인용해 “바다는 작은 물줄기들을 마다하지 않기에 그 깊이를 더해간다(하해불택세류 고능취기심·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 민주주의는 바다처럼 다양한 생각을 포용하는 것이 본질”이라고 다수의견에 우려를 표시했다. 하지만 사상의 다양성을 강조한 김 재판관마저 서울고법이 내란선동 모임으로 규정한 지난해 5월 마리스타 회합 당시 이석기 의원 등이 한 발언에 대해 “민주적 기본질서에 어긋나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발언”이라고 판단했다. 김 재판관은 “일탈행위를 한 일부 당원들은 형법이나 국가보안법, 국회의 제명을 통해 배제할 수 있는 만큼 정당 해산은 최후적으로 활용돼야 한다”고 밝혔다. 통진당에 문제는 많지만 해산 결정은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추천을 받은 안창호 재판관은 조용호 재판관과 함께 ‘대역(大逆)행위’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통진당을 강하게 비판하는 보충의견을 냈다. 두 재판관은 “맹자의 고사에 나오는 ‘피음사둔(피淫邪遁·번드르르한 말 속에서 본질을 간파한다)’이란 말처럼 통진당 주도세력의 가면과 함정에 속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통진당이 진보적 민주주의와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면서 자유민주주의의 전복을 꾀하는 행동은 우리의 존립 기반을 파괴하는 대역행위로서 불사(不赦)의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며 해산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안 재판관은 대검 공안기획관 출신으로 2006년 일심회 간첩사건 수사를 지휘하기도 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이석기#통진당#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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