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95주년 2015 새해 특집]
[통일코리아 프로젝트 3년차/준비해야 하나 된다]
[사회주의 굴레 벗은 나라들]<下>산업구조 개혁 우즈베키스탄
“우즈베키스탄만의 구글,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만들고 싶어요. 내 꿈은 우즈베키스탄의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창업자)가 되는 겁니다.”
지난해 12월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이 지원하는 직업훈련원의 정보기술(IT) 실습 강의에 열중하던 우즈베키스탄 청년 파루크 투라예프 씨(20)가 당찬 포부를 밝혔다. 고등학교에선 도로안전 기술을 배웠다는 그는 “IT 분야에서 일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IT를 제대로 배울 곳이 이곳(직업훈련원)뿐입니다”라고 말했다. 컴퓨터를 처음 접한 것이 직업훈련원에 들어오기 두 달 전이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그가 직업훈련원 교육 6개월 만에 이런 꿈을 가진 것이다. 그에게 “꿈을 이루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으냐”고 묻자 망설이지 않고 “5, 6년”이라고 답했다. 랍샨 이브라기모프 직업훈련원장(48)도 한마디 거들었다. “훈련원에서 가장 성적이 좋은 학생이에요.”
○ 시장 개방 산업 변화에 필요한 고급 인력 배출
IT 선진국인 한국에선 이런 꿈이 새롭지 않은 일이지만 우즈베키스탄은 다르다. IT의 불모지이기 때문이다.
1991년 옛 소련에서 독립한 뒤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이 계속 집권하면서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하던 우즈베키스탄은 최근 들어서 점진적으로 시장을 개방하고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하고 있다. 수출 지향 산업국가로 전환하기 위해 산업구조를 개혁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경제성장률이 8%대에 이를 정도로 역점 산업 분야가 발전하고 있지만 필요한 숙련 기술 노동자는 많지 않다. 불과 얼마 전까지 농업 등 1차산업이 우즈베키스탄을 지탱해 왔기 때문이다. 산업구조 변화에 따라 짧은 시간에 숙련 기술자를 배출할 교육 시스템이 우즈베키스탄 정부에 필요했다. 특히 경제 발전의 핵심 원동력인 IT 전자 기계 자동차 분야 산업 역군이 절실해졌다.
KOICA가 400만 달러(약 44억 원)를 지원해 2012년 문을 연 타슈켄트 직업훈련원은 그런 점에서 우즈베키스탄 정부에 알짜 보물이 됐다.
직업훈련원은 IT 전자 기계 자동차 등 4개 분야 학과로 구성된다. 우즈베키스탄 어느 기술고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첨단 실습 장비를 갖추고 있다. 6개월의 실습 이론 강의와 3개월의 직장 내 직업훈련(OJT)으로 이뤄지는 강의는 2년여 만에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한국 교수진의 교육 컨설팅을 받고 한국에서 연수한 24명의 현지인 교사들이 KOICA 봉사단원 4명과 함께 학생들을 가르친다.
직업훈련원의 소디코프 아스로르 이브라기모비치 자동차학과 교수(32)는 “최근 GM, 일본의 버스 제조 회사인 ISUZU, 독일의 트럭 제조 회사인 MAN 등 자동차 공장과 부품 업체, 관련 서비스 제공 업체들이 우즈베키스탄 각지에 생겨나고 있다”며 “이곳들로부터도 ‘준비된 기술자’를 배출하는 기관으로 호평받고 있다”고 말했다.
○ 북한이 체제 전환 선택하면 적용 가능
샵카트 미르지요예프 우즈베키스탄 총리가 지난해 11월 이곳을 찾은 정홍원 국무총리에게 직업훈련원을 극찬할 정도였다. 성공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게 만드는 힘이 있다.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수도 타슈켄트에 이어 사마르칸트, 샤흐리삽즈, 페르가나, 우르겐치 등 총 5개 지역에 직업훈련원을 건립한다는 마스터플랜을 세웠다. 이 중 우르겐치를 제외한 4곳이 KOICA에 지원을 요청했다. KOICA는 우르겐치도 요청해 올 것으로 예상한다.
임정희 KOICA 우즈베키스탄 사무소장은 “이 시스템은 북한이 체제 전환과 시장 개방을 선택할 경우 충분히 적용 가능하다”고 말했다. 북한의 해커들은 자신의 꿈이 아니라 사이버전쟁을 위해 훈련받는다. 북한 문제 전문가들은 “직업훈련원 시스템이 그들에게도 해킹 대신 저커버그의 꿈을 꿀 수 있게 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 전자도서관 확대… 지식 갈증 풀어줘 민주화 촉진 ▼
전자정부 지원 사업도 성과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의 우즈베키스탄 지원 사업은 전자정부, 전자도서관 지원에 집중되고 있다. 과연 전자도서관 사업은 체제 전환에 어떤 도움이 될까. 우즈베키스탄의 출판 사정을 알고 나면 시장경제화가 진행되면서 사회가 점차 개방되는 국가에선 전자도서관의 필요성을 깨닫게 된다. 지식 공유를 통한 민주화를 앞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성애 KOICA 우즈베키스탄 사무소 부소장은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의 책값은 20∼30달러(2만2000∼3만3000원)로 근로자 평균 임금 200∼300달러의 10분의 1 수준이다. 서점도 많지 않다”고 말했다.
타슈켄트의 니자미사범대도 학생들이 교과서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어 왔다. 그러다가 KOICA가 2013년 구축한 전자도서관이 학생들과 지역 주민의 삶을 완전히 바꿨다.
이 학교는 전자화 이후 교과서부터 100% 전자책으로 만들어 전자도서관 회원 가입자 1만3000명에게 공개했다. 율다셰프 이브로힘 유라예비치 니자미사범대 전자정보센터장(58)은 “사전, 백과사전, 문학작품까지 도서관이 보유한 책 100만 권을 전자화하는 데 2, 3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KOICA에서 지원하기 전에는 125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감사의 뜻을 나타냈다. 전자도서관에서 만난 압둘라예프 디요르 씨(19·역사학과 4년)는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KOICA가 2009년 타슈켄트 중앙사료보관소 산하 중앙문서기록물보관소, 중앙영상기록물보관소, 중앙과학기술의료기록물에 지원한 전자기록물 시스템도 주목된다. 우즈베키스탄 역사 유산의 안전한 보존을 위한 지원 작업이다.
쿠차로바 딜도라 루트풀라예브나 중앙사료보관소 부소장은 “전자화 과정에서 존재조차 몰랐던 가치 있는 옛 사료를 찾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 우즈베크 유일 첨단온실선 ‘토마토 수출 꿈’ 쑥쑥 ▼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 외곽의 고려인 마을에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지원해 만든 전자동 시범 온실. 농산물 수출을 국가 전략 사업으로 선정한 우즈베키스탄의 희망이 되고 있다.
전자동 환경 제어 시스템이 적용된 온실은 우즈베키스탄 전체에서 KOICA가 지원해 2013년에 만들어진 이곳이 유일하다. 첨단 제어 시스템 덕분에 지난해 12월 1차로 ha당 토마토 120∼160t을 수확했다. 우즈베키스탄의 일반 농가에서 ha당 수확하는 토마토가 50t인 것과 비교된다.
시범 온실을 경영하고 있는 샵카트 살로모프 전 우즈베키스탄 농림수자원부 국장은 “올해 이곳에서 재배한 토마토 1kg에 3200숨(1숨은 1원)을 받았다. 일반 농가 재배 토마토는 1200∼1500숨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만큼 품질이 좋다는 얘기다.
KOICA에서 파견한 온실재배 전문가 김익준 씨(60)는 “주 정부 한 곳이 온실 농업 의향을 밝히는 등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복합농촌단지 구상을 핵심으로 제시하는 한국 정부의 남북 농업 협력에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이곳에서 실험하고 있는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