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시장에 재선된 뒤 단숨에 야권 대선 후보군으로 부상한 박원순 시장은 21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 도중 이렇게 말했다. 차기 행보를 묻는 질문이 나오자 부담을 느낀 모양이다.
박 시장은 ‘대선 불출마 생각엔 변함없느냐’는 질문에는 즉답을 피했다. “서울시장의 직무가 중요하다”라고 말할 뿐이었다. 박 시장은 재선 직후에 “당연히 임기를 다 채울 것”이라고 했다.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가 느껴졌다.
불과 몇 년 사이에 그의 위상은 크게 달라졌다. 4년 전에는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 덕분에 서울시장이 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야권의 대선주자 1, 2위를 다툴 정도가 된 것이다.
박 시장은 올해 시정의 화두로 ‘민생’을 꼽았다. 조선시대 실학자들이 내세운 이념인 ‘이용후생(利用厚生)’을 강조했다. 백성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겠다는 뜻이다. 그는 ‘21세기의 실학자’로 불리고 싶다고 했다.
“지금도 민생은 도탄에 빠져 있고 사회적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21세기의 실학이라는 게 과연 있는지 성찰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박 시장은 △안전 △복지 △경제를 시정 2기의 중점 추진 과제로 정했다.
그럼에도 박 시장이 재선한 뒤 ‘보은 인사’, 서울시향 내부 갈등, 서울시 인권헌장 채택 무산 등 박 시장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박 시장은 측근인 기동민 전 정무부시장, 권오중 전 정무수석을 서울시립대 초빙교수로 임용했다가 ‘보은 인사’ 논란에 휩싸였다. 5급 별정직으로 들어온 김원이 서울시 정무수석이 1급에 준하는 대우를 받은 사실이 감사 과정에서 불거져 ‘특혜’ 의혹이 일었다. 박 시장은 “나의 인사 원칙은 가장 공정한 방법으로 가장 적합한 인물을 배치하는 것”이라며 “큰 부끄럼이 없이 그 과정을 밟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김 정무수석 특혜 의혹에 대해선 “면밀하게 조사해 잘못이 있다면 엄정하게 바로잡겠다”고 했고, 공금 유용 사실이 드러난 서울시향 정명훈 감독과의 재계약 추진에 대해선 “감사 결과가 재계약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정 감독과 협의해 나가겠다”고 했다.
박 시장은 지난해 7·30 재·보궐선거 때 ‘박원순 마케팅’ 전략을 짠 새정치연합과 거리를 뒀다. 당의 한 관계자는 “괜히 (박 시장이) 한쪽 편을 잘못 들었다가 (자신의) 지지율을 깎아 먹을까 우려해 아예 발을 담그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 시장은 “어설프게 여의도나 기웃기웃하면 당에 유리하겠나”라며 “당이 신뢰받는 시장을 배출한다면 당(지지율)도 함께 올라가는 것 아닌가”라고 반박했다.
인권 변호사 출신인 박 시장은 성소수자 인권 보호에도 엉거주춤한 태도를 보인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는 지난해 서울시 인권헌장의 ‘성소수자 차별 금지’ 조항이 보수단체와 종교단체의 반발에 부닥치자 인권헌장 채택을 무산시켰다. 박 시장은 “소통이 부족했다”며 “반성과 성찰의 계기가 됐다”고 아쉬워했다. 그럼에도 “강물이 도도히 흐르듯 서울시정 변화의 흐름은 그 한 사건으로 중단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동성애를 반대하느냐’라는 질문에 “그 얘기는 그만하자. 이미 다 정리한 문제인데…”라며 즉답을 피했다.
박 시장은 저울의 한쪽에는 소신을, 나머지 한쪽에는 지지율을 놓고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저울질이 오래가면 둘 다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박 시장의 다음 선택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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