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정치복지’는 어려운 사람을 도우려고 한 게 아니라 표를 얻으려고 한 거다. 정치복지는 절대로 지속가능하지 않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4일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최근 ‘증세 없는 복지’ 논란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현재 무상복지 시스템은 여야 정치권이 한 표를 의식한 복지 포퓰리즘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오 전 시장은 2011년 8월 시장직을 걸고 야권이 주도한 무상급식을 막기 위한 주민투표 승부수를 던졌다. 투표율(25.7%)이 개표 기준(33.3%)에 못 미쳐 시장직을 물러나야 했다. 이 때문에 지지자들에게서 야권의 박원순 시장이 등장하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호된 비판을 받아야 했다.
그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중장기 자문단의 일원으로 2013년 11월 페루 리마시에서 도시행정분야 자문단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지난해 6월 귀국했다가 한 달 뒤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전직 시장 경험을 살려 환경, 도시행정, 법률체계 개선 등에 대한 자문 활동을 벌였고, 지난달 30일 귀국했다. 해외에서 머무르던 그가 우리나라의 최근 ‘선별적 복지냐 보편적 복지냐’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궁금했다.
오 전 시장은 “4년 전 시장 직까지 그만두면서 주장하고 싶었던 것은 보편적 복지를 지향해서는 (재정을) 감당할 수 없다는 점”이라며 “당시 여야는 너나 할 것 없이 표 계산만 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 뒷북치고 있어 아쉽지만 그나마 이제라도 (여야간) 논의가 시작된 건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먼저 지지율이 추락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고뇌를 이해한다”며 운을 뗐다.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하다고 보나.
“4년 전부터 항상 주장한 게 지속가능한 복지를 해야 한다는 거였다. 보편적 복지는 절대 지속가능하지 않다. 지금 흘러온 수순은 틀린 수순은 아니라고 본다. 지금 박 대통령은 국민들께 어떻게든 증세 없이 복지를 해보려고 최대한 노력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은 무언의 설득을 하고 있는 셈인 것 같다. 우선 복지 구조조정을 하고, 효율적으로 예산을 쓰고 난 뒤, 그래도 돈이 필요하면 걷어야지 뾰족한 수가 없다.”
―해법은 4년 전처럼 선별적 복지라는 주장인가.
“재원이 충분해질 때까지는 그렇다. 어려운 사람부터 순차적으로 도와야 된다. 세금복지라는 말을 못 쓰고 무상복지라는 말을 써서 패러다임 전쟁에서 졌다. 선별적 복지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은 못 한다. 그래서 한 마디로 대답하지 못하고 길게 얘기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정말 복지가 부족한 나라다. 그럼 어려운 사람부터 먼저 돕고 그분들의 수요가 해소되면 보편적 복지로 가야한다. 순서가 그렇다. 어쨌든 지금처럼 갈 수는 없다.”
그는 야권 일각에서 복지선진국이라고 말하는 영국을 퇴임 이후 찾아 복지혜택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사회적 갈등을 직접 목격했다고 했다.
―왜 하필 퇴임 후 영국으로 갔나.
“영국에서 최초로 복지 개념이 생겨난 걸로 안다. 우리보다 훨씬 경험이 많은 곳이니 그런 걸 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실제로 가서 지켜본 영국의 복지현실은 어땠나. 우리가 배울 점은 있었나.
“내가 갔던 2012년 당시 영국은 우리가 겪는 상황과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었다. 이른바 복지 구조조정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양상이 좀 달랐다. 과감하게 혜택을 없애버렸다. 데모를 하든 말든 주던 걸 없애버렸다. 그에 비하면 현재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복지 구조조정에 대한 논의는 양질인 편이다. 그때 충격이 컸다. 결론적으로 그때 보면서 ‘정치복지’를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
―‘정치복지’라는 게 정확히 뭘 말하는 건가.
“우리나라의 ‘정치복지’는 어려운 사람을 도우려고 한 게 아니라 표를 얻으려고 한 거다. 정치복지는 절대로 지속가능하지 않다. 복지 재원에 대한 체계적인 구상 없이 정치복지로 시작하면서 이 사단이 났다. 4년 전 시장 직까지 그만두면서 주장하고 싶었던 것은 보편적 복지를 지향해서는 (재정을) 감당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당시 여야는 너나 할 것 없이 표 계산만 하고 있었다. 아쉽지만 그나마 이제라도 (여야 간) 논의가 시작된 건 다행이다. 정부는 수익을 내는 기업체가 아니다. 복지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건지, 지도자라면 그 다음의 이야기를 해야 할 시점이다.”
―그럼 복지 논쟁 다음의 화두는 뭐라고 생각하나.
“경제성장률이 7, 8%대를 기록하던 시대는 지났다. 많이 걷어야 많이 쓸 수 있다는 전제가 성립되는 정도의 재정 상태라면 결국 어떻게 돈을 벌어 와야 하는 지를 얘기해야 하는 데 그 얘길 하는 지도자가 없다는 게 안타깝다. 남미의 페루, 아프리카의 르완다에 가서 보니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국제 사회의 시선이 싸늘하다는 것을 느꼈다. 최근 국가 호감도 조사결과를 봤다. 중남미에서는 우리나라가 바닥을 기고 있었다. 우리나라 무상원조 규모는 유엔이 권고하는 국민총생산(GNP) 대비 원조비율(0.7%)에 훨씬 못 미치는 0.15%에 불과한 걸로 알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0.29%의 절반밖에 안 되는 거다. 지금 재원 부족으로 복지 논쟁이 한참인데 이런 얘기가 공허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처럼 국제사회에 수출해서 먹고 사는 나라가 다른 나라들로부터 혜택만 보고 기여는 등한시 여기는 나라라는 평가를 받는 순간 회복 불능의 타격을 받는다.”
―당장 복지 예산 쓸 돈도 없는데 왜 갑자기 무상원조 이야기인가.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중남미 시장은 세계 시장의 3분의 1이다. 그런데 남미에 가서 보니 대기업 몇 군데를 빼고는 한국 기업이 발을 못 붙이고 있다. 결국 정보 부족이다. 물론 삼성 현대 같은 대기업은 자기들이 닦아 놓은 루트로 진출할 수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 같은 곳은 정보를 얻을 곳이 없다. 젊은이들을 해외로 많이 내보내야 한다. 지역학을 공부해서 지역전문가들을 양성시켜야 한다. 이런 사람들이 해외에서 취업, 창업을 하거나 국내로 돌아와 취업을 하면 그게 다 자산이 된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말로 하면 공감이 안 된다. 그래서 내가 솔선수범이 돼야겠다 싶어서 코이카 프로그램에 참여해본 거다.”
―해외에서 활동하며 얻은 경험으로 내린 결론이 뭔가. 그래서 어떤 비전을 보여주고 싶나.
“비전은 책을 읽어서 나오지 않는다. 현장을 바닥부터 돌아보니 생각이 정리됐다. 결국 존경 받는 품격 국가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시점에 또 무슨 현실과 괴리된 소리를 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국제사회에서 존경받는 국가가 되지 못하면 결국 해외시장 진출이 어려워지고, 그럼 결국 복지재원을 마련하는 데도 심각한 문제가 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런 내 생각과 비전을 정리해서 다음 달에는 책을 낼 생각이다.”
그는 남미 페루와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화해와 리더십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고 한다. 품격있는 나라로 가는 길에 대한 생각도 틈틈이 블로그를 통해 정리했다. 국가이미지와 국가경쟁력을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을지, 젊은 인력을 해외로 보내 해외원조를 바탕으로 국제시장에 뛰어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 등을 느꼈다고 한다.
4년의 자숙 기간을 거쳤다는 생각일까. 그동안 그는 현실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말해왔지만 이날은 정치적 기지개를 켜는 듯한 말을 했다.
―책을 낸 다음엔 뭘 할 건가. 당장 내년 국회의원 총선에서 수도권 선거가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데 총선이나 내후년 대선 출마할 생각은 있나.
“그런 말을 하기엔 아직 시기가 이르다. 나는 그래도 바탕이 대한민국 정치인이다. 하지만 정치적 사회적 책임을 더 이상 피하지 않겠다. 언제 어느 자리에 있든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그게 정치의 길이라면 좀 더 직접적일 수 있고, 아니면 다른 간접적 방법일 수도 있지만 언제 어느 자리에 있건 책임을 소홀히 하지 않겠다. 3, 4년 떠돌았으니 떠돌 만큼 떠돌았고.(웃음)”
인터뷰가 끝날 즈음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심경을 물었다. 그는 한참을 생각한 뒤 말문을 열었다.
“나도 사람인데 왜 한이 없었겠나. 초임 시장이 좋게 얘기해서 ‘과감하게’ 내가 해왔던 정책을 백지화하고 폄하하고, 심지어 내가 대권욕에 사로잡혀 전시행정을 한 것처럼 비난하는 기간이 1년 이상 지속될 때 내 속심정이 어땠겠나. 그런데 1년 정도 지나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나도 취임 초에는 잘 몰랐다. 그런데 박 시장이라고 해서 뭘 알았겠나. 이제 박 시장을 이해는 할 수 있다. 결국엔 내가 주장한 ‘감성투자’의 결과물인 세빛섬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열었다. 감성투자는 딱 욕 먹기 좋고 위험한 투자다. 성과가 계량화 되서 당장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둘 다 큰 성공을 거두고 있지 않은가. 나는 한 풀었다.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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