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3시 40분 서울고법 312호 중법정. 1시간 40분가량 진행된 공판에서 실형선고를 한 후 재판부가 발언 기회를 주자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은 주먹을 굳게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저로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며 “앞으로 계속 재판을 받겠다”고 밝혔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재판장인 김상환 부장판사는 “징역형 선고에 따라 구속 사유가 있다고 판단해 이 자리에서 구속영장을 발부하겠다”며 단호한 어조로 법정구속을 명령했다. 원 전 원장은 방청석에서 기다리던 부인에게 열쇠와 코트를 건넨 뒤 법정 경위를 따라 사라졌다.
이날 원 전 원장은 공판 시작 2분 전 감색 줄무늬 정장에 하늘색 넥타이 차림으로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취재진과 일부 보수단체 회원들로 가득 찬 방청석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엷은 미소를 띠며 다소 여유 있는 표정으로 피고인석에 앉았다. 법정에 들어가기 전만 해도 그의 변호인은 취재진에 “재판 후 법원 1층 입구 포토라인 앞에서 짧게 한마디 할 테니 재판 들어갈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결국 그는 취재진 앞에서 발언할 기회가 없었다.
재판부는 선고에 앞서 “한 사람의 죄와 벌을 다루는 그 어떤 형사재판도 담당하는 법관에게 끝없는 숙고와 고민을 요구한다. 이 재판부도 예외는 아니다”고 소회를 밝혔다. 김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논어’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나와 다른 생각에 대해 공격한다면 이것은 손해가 될 뿐”이라며 국정원의 행태를 비판했다. 원 전 원장은 재판이 진행된 2시간 내내 꼿꼿한 자세로 재판부를 응시했지만 막상 실형선고가 나자 당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앞서 원 전 원장 측은 지난달 30일 재판부에 신변보호 요청서를 제출했다. 1심 선고 이후 위해를 가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날은 1심 때와 달리 특별한 소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원 전 원장 측 변호인인 법무법인 ‘처음’의 이동명 변호사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항소심 판단이 굉장히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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