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1시 45분경 국회 본관 246호실.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 표결을 앞두고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총회에서 박수현 의원(충남 공주)이 마이크를 잡았다.
“제가 충청권 의원이고 이 후보자와 지역구가 겹쳐 찬성표를 던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들이 계신 줄 안다. 하지만 우리는 충청 총리를 뽑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총리를 뽑는 것이다. 걱정하지 말고 표결에 참여하자.”
당 지도부의 큰 걱정은 ‘표결 참여’ 여부가 아니었다. ‘이탈 표를 얼마나 최소화 하느냐’였다. 문재인 대표 체제의 첫 시험대였기 때문이다.
○ ‘찬성 표’를 막아라
문재인 대표와 우윤근 원내대표 등 지도부는 전날 원내대책회의와 심야 최고위원회의에서 ‘표결 참여’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한 최고위원은 “최고위원 5명 중 ‘3 대 2’로 찬성이 많았다. 반대하는 쪽도 ‘다수의 뜻에 따르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에 동의한 문 대표는 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표 단속에 들어갔다.
이날 의총에서도 의원들이 얼마나 본회의장에 모일지 점검한 뒤 당내 이탈 표가 거의 없다는 것이 확인되자 “들어가서 표결하자”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시모상 중인 진선미 의원과 출산한 지 닷새밖에 안 된 장하나 의원까지 표결에 참여할 정도였다.
새정치연합이 표결에 참여한 배경엔 ‘장기적 대치 국면’으로 갈 경우 출구가 마땅치 않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 관계자는 “이 문제를 갖고 어떤 원내 투쟁을 할 수 있겠으며, 그로 인한 국회 공전의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의원총회에서도 “본회의에 안 들어가고 버틴다면 지리멸렬하고 무기력해 보일 수 있다”며 “국민이 우리에게 실망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라는 의견이 다수의 지지를 얻었다.
새정치연합이 투표를 보이콧할 타이밍을 놓쳤다는 분석도 있다. 수도권 재선 의원은 “첫날 보이콧을 하고 여론을 우리 쪽으로 끌고 왔어야 했다”며 “16일로 본회의를 연기한 마당에 보이콧을 한다는 건 야당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라고 했다.
새정치연합이 본회의 표결에 참여한 건 달라진 야당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나왔다. 과거처럼 소수 강경파가 의총 분위기를 휘어잡고 침묵하는 다수를 억누르지 않았다는 것.
우 원내대표는 본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많은 분이 변화된 야당의 모습을 보이자, 반대를 하더라도 당당히 전원이 들어가 투표에 참여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권노갑 김원기 상임고문 등 원로들도 “본회의에 들어가 반대하라”고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 文, 여론조사 발언 비판에 표결 참여 시각도
정의당 의원 5명이 이날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불참을 전격 선언하자 새정치연합은 허를 찔린 모습이었다. 내부 단속에 집중하느라 정의당을 붙잡지 못해 반대표 전략에 일부 구멍이 난 것이다. 그래도 문 대표는 리더십의 첫 시험대를 통과했다는 평가가 많다. 당 소속 의원 참석자 124명(전체 의석 130석) 전원의 반대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당대회 과정에서 나온 문 대표의 ‘호남총리론’ 발언과 13일 여야 공동 여론조사를 통해 총리 인준을 결정하자는 ‘돌출 제안’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다. 충청권에서 이 후보자에 대한 동정 여론이 높아지자 문 대표가 표결 참여로 돌아선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된다. 특히 여론조사 발언 이후 “대의 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것 아니냐”는 따가운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표결 참여가 이 후보자 인준 통과를 의미하는 상황에서 ‘의회정치의 틀’로 복귀해 비판 여론을 잠재우고, 내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충청 표심으로부터 외면당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있지 않았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문 대표 측은 “문 대표가 줄곧 표결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고 여론조사 제안도 민심을 활용해 여당을 압박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표의 이 같은 행보에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리더는 여론을 존중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여론을 추종하는 걸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고민이 반영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의제와 전략그룹 더모아’의 윤태곤 정치분석실장은 “호남총리론, 여론조사 제안은 정부·여당 지지층의 역(逆)결집을 부른 전략적 실수”라며 “야당은 정부와 대결하기보다 정부에 대한 평가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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