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희생 헛되지않게… 통일 향한 금강산 길 열렸으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7일 03시 00분


[통일코리아 프로젝트 3년차/준비해야 하나 된다]
[통일은 치유다]<中>금강산관광 피격 사망, 그후 7년

시간이 갈수록깵 사무치는 ‘어머니’ 금강산 관광을 하다 북한군의 총격으로 숨진 어머니 고 박왕자 씨의 발인이 진행된 2008년 7월 15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어머니의 영정을 붙잡고 울먹이는 방재정 씨. 지난달 인터뷰에 응한 방 씨는 사진 촬영은 사양했다. 동아일보DB
시간이 갈수록깵 사무치는 ‘어머니’ 금강산 관광을 하다 북한군의 총격으로 숨진 어머니 고 박왕자 씨의 발인이 진행된 2008년 7월 15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어머니의 영정을 붙잡고 울먹이는 방재정 씨. 지난달 인터뷰에 응한 방 씨는 사진 촬영은 사양했다. 동아일보DB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2008년 7월 초 어머니가 금강산으로 여행을 떠나며 건네던 인사가….

밝은 웃음으로 헤어졌던 어머니 박왕자 씨는 며칠 뒤인 11일 북한군이 쏜 총에 맞아 시신으로 외아들 방재정 씨(30) 앞에 돌아왔다. 북한군이 새벽에 산책하던 박 씨에게 북측 군사경계지역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총격을 가했던 것이다.

“그때 기억은 더 안 잊혀요. 꺼내 보기 싫은 기억은 아니에요. 제게 무한한 사랑을 주셨던 어머니니까…. 불편해도 가끔씩 떠올리는 게 맞아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지 7년이 지났다. 당시 대학생이던 방 씨는 지금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담담해졌지만 주변은 그렇지 않다. 직장동료 선후배 친구들이 여전히 그의 눈치를 본다. “어머니라는 세 글자를 꺼내는 것 자체를 미안해해요. 여자친구와도 편하게 얘기해 보지 못했어요.”

7년 전 그날. 방 씨에게 분노보다 더 컸던 감정은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결(結)은 있는데 기승전(起承轉)이 아예 빠져 있었어요. 어머니가 왜 돌아가신 지점에 갔고, 통제는 왜 안 됐는지, 왜 발포했는지…. 제대로 밝혀진 게 없어요. 북한이 요지부동으로 무시하니 밝혀낼 방법이 없어져 버린 거죠. 엄청난 절망감과 무력감이 들었습니다.”

○ “진상 밝혀주면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아”

지난달 14일 서울의 한 식당에서 만난 그는 더이상 분노와 무력감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남북이 대화를 해야 어머니 사건이 풀리지 않겠어요? 대화 없이 남북이 서로 요구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남북 관계 경색이 길어지면서 어머니 문제도 진전 없는 답답함의 연속이 된 거죠.”

그는 남북 관계가 개선돼야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남북 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네가 이렇게 안 하면 우리도 대화 안 해’라는 식으로는 안 돼요. 남북 대화는 상대방을 무시하지 않아야 가능합니다. 북한이 돌발행위를 하지 않도록 만드는 노력은 대화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에게 ‘대화를 통해 북한이 어떤 조치를 취하면 조금이라도 상처가 치유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북한이 어머니 사건의 진상에 대해 알고 싶은 걸 밝혀주면 한결 나아질 것 같아요. ‘유감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겠다’고 해주면 정말 반가울 겁니다. 사죄보다 ‘다시는 이런 사건이 안 일어나도록 하겠다’는 의지와 조치를 보여주는 게 더 반가울 것 같아요.”

○ “남북 접촉 많아야 통일 이후 갈등 해소”

방 씨는 “금강산 관광은 궁극적으로 재개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고 말했다.

어머니를 잃게 만든 금강산 관광이 싫을 법한데 그렇지 않았다. ‘왜냐’고 물었다.

“관광의 취지가 잘못되지는 않았잖아요. 남북 교류협력의 큰 창구이자 상징물이었어요. 개성공단도 마찬가지고요. 금강산 관광은 통일을 위해서도 효율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해요.”

그가 말을 이어갔다. “남북이 너무 오래 떨어져 지냈고 너무 다른 사회였기 때문에 (통일이 돼도) 갈등이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남북한보다 격차가 적었던 동-서독도 통일 뒤 아직까지 후유증을 겪고 있잖아요. 통일의 열매는 빨리 오지 않을 겁니다. 통일이 되더라도 같은 나라 구성원으로 어울리며 유대감을 갖는 진정한 의미의 통일까지는 매우 오래 걸릴 겁니다. 결국 남북이 접촉과 교류를 활발히 해 남북 주민의 위화감을 줄이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겠어요?”

그에게 ‘북한으로 인해 감당하기 어려운 아픔을 겪었는데도 예상보다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을 건넸다. 그가 답했다.

“그날 이후 ‘비극의 현장에 가장 가깝게 관련된 한 명이라는 점을 자각하며 살자, 건전한 시민이자 국민의 역할을 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남북 관계에 대해) 더 관심 있게 지켜보고 깨어 있자는 생각도 했고요. 제가 특별한 사람이거나 성인군자처럼 너그러워서가 아니에요. 과거는 잊지 말아야 하지만, 과거에 머무르거나 반복하지 않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어머니의 죽음도 헛되지 않겠죠. 하늘에 계신 어머니도 제가 슬퍼만 한다고 좋아하실 것 같지는 않아요.”  
▼ 北에 몰수당한 4200억 자산… 원상복구도 풀어야할 과제 ▼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해 해결해야 할 주요 사안은 북한이 몰수한 금강산 관광지구 내 한국 측 자산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다. 관광 재개를 위해서는 원상복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2010년 4월 금강산 관광지구 내 민간기업 자산에 대해 동결 조치를 하고 정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소유한 부동산을 몰수했다. 당시 현대아산 등 민간기업들의 숙박시설 등 건설투자 비용은 3593억5000만 원, 정부 자산인 이산가족면회소와 소방서, 관광도로 포장 지원 등에 사용된 비용은 598억6000만 원이었다. 모두 4192억1000만 원어치의 한국 자산을 일방적으로 동결, 몰수한 것. 2011년 8월에는 몰수한 한국 측 재산을 법적 처분하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북한은 지난해 9월 중국 랴오닝(遼寧) 성 다롄(大連)에서 열린 대북 투자설명회에서 “남측 자산을 몰수한 적이 없다”며 금강산과 원산 일대에 대한 한국의 추가 투자를 제안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어머니#희생#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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