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九旬)의 노정객은 베레모를 벗은 뒤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눈을 감은 채 침묵의 인사를 했다. 15초쯤 흘렀을까…. “한번 만져보세요”라며 아들 진 씨가 유골함을 건넨다.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는 한 줌 재로 변해버린 박영옥 여사의 ‘마지막 흔적’이 담긴 은제 유골함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참아왔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딸 예리 씨는 조용히 그의 눈물을 닦았다. 64년의 반려자를 그렇게 지상에서 영원으로 떠나보냈다.
박 여사의 발인은 25일 오전 6시 30분 서울아산병원에서 치러졌다. 검은 양복 차림에 진한 색안경을 끼고 나타난 JP는 발인 내내 침울하게 굳은 표정이었다. 발인을 마친 뒤 그들의 안식처였던 서울 중구 신당동 자택을 들렀다. 자택에서 노제(路祭)를 지켜보던 JP는 집 안을 한 바퀴 돈 고인의 영정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렸다.
이날 측근들은 JP의 건강 상태를 고려해 발인 후 바로 장지로 가자고 여러 차례 설득했다고 한다. JP는 부인이 별세한 뒤 “입맛이 없다”며 입에 넣어주는 음식도 물릴 정도로 며칠째 거의 식사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JP는 끝까지 “그래도 마지막 길인데 가야지”라며 이날 장례 절차에 모두 참석했다.
화장이 치러진 서울추모공원에서도 JP는 직접 유골을 받는 자리를 지켰다. 유족들은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면서 “안녕히 가세요, 어머니”, “그동안 고마웠습니다”라며 오열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근령 씨도 남편과 함께 서울추모공원에서부터 장지인 충남 부여군 외산면 반교리 가족묘원까지 가 ‘사촌언니’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모든 절차가 마무리된 오후 3시 20분경. 가족묘역에 마련된 부부 합장 납골묘를 한동안 지키고 있던 JP는 “여러분이 저희 부부를 사랑해 주셔서 오늘이 있게 됐습니다. 희망찬 내일이 되길 바라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긴 뒤 자택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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