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A어린이집에는 만 3세 이하 영유아 50여 명이 다니고 있다. 이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집 중 엄마가 전업주부인 가정은 절반 정도. 집에서 키울 수 있는데도 공짜 보육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부모들이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이다. 어린이집 관계자는 “일부 전업주부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걸 힘들어하는 아이를 잠깐씩 집에서 키우기도 하지만 금방 다시 이곳으로 보낸다”고 말했다.
복지 및 재정 전문가들이 무상복지 제도 개혁을 강조하는 것은 현행 복지체계가 ‘공짜 점심’을 이용하도록 부추기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동아일보가 제안하고 전문가들이 검토한 복지 구조조정안을 토대로 정부와 정치권이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 복지정책의 효율성을 높이도록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공짜 어린이집 보육’ 줄이는 쪽으로 유도
0∼5세 어린이에 대한 정부의 월 보육료 지급 체계는 연령별로 다르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경우, 자녀가 만 0세라면 가정에 40만6000원, 어린이집에 37만2000원 등 총 77만8000원을 지원한다. 1세 아동에 대해서는 총 53만6000원을 주고 2세에 대해서는 총 41만3000원을 지급한다. 3∼5세 어린이를 키우는 가정에는 월 22만 원의 보육료만 직접 주고 어린이집에는 지원금을 주지 않는다. 반면 집에서 자녀를 키우면 나이에 관계없이 0∼5세 모두에게 양육수당만 지급한다. 0세 20만 원, 1세 15만 원, 2∼5세 10만 원이다.
가정 양육수당과 어린이집 이용 가정에 대한 보육료 지원금 사이에 차이가 생긴 것은 제도를 설계할 때 재정 상황을 감안해 양육수당을 일률적으로 줄였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는 비용을 상황별로 분석한 결과가 아니라 가용 재원에 지원액을 짜 맞춘 것이다. 부모로선 아이를 어린이집에 안 보내고 집에서만 돌보면 손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전문가들 대부분이 동의한 구조조정안은 집에서 아이를 키우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어린이집 이용 가정에 주던 월 보육료를 5만 원 정도 줄이거나 어린이집 이용 가정이 부담금을 내도록 하고, 이렇게 해서 쌓은 재원으로 가정양육수당을 월 20만 원씩 늘려주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무상보육에 드는 재정 부담이 전체적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처음에는 가정 양육수당을 늘리는 만큼 재정 부담이 커진다. 하지만 어린이집 이용 가정이 새로 부담금을 내고 이 가정에 지원돼온 보육료를 일부 줄이면 양육수당 추가 지원에 드는 재원을 충당할 수 있다. 특히 자녀를 어린이집에 보내던 가정이 자가 양육으로 전환하면 정부 입장에선 0세 기준 총 지원금이 77만8000원에서 40만 원으로 줄어든다. 재정 부담도 크게 준다.
어린이집으로 몰리는 아이들이 줄면 어린이집 보육의 질이 개선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다만 매달 드는 부담이 지금보다 늘어나는 만큼 불만이 생길 소지도 있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소득 수준과 맞벌이 여부에 따라 보육료 지원 수준을 차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 집안 사정 티 안 나게 무상급식 조정
초등학교 및 중학교 대상 전면 무상급식과 고등학교 무상교육 사업도 개혁 대상이다. 현행 무상급식으로는 양극화 해소 효과를 내지 못할 뿐 아니라 재정 지출을 감당하기 어렵다.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무상급식이 저소득층 가구 자녀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부유층 자녀까지 포함한 것은 선별적 무상급식을 할 경우 ‘가난한 집 아이’이라는 낙인이 찍힐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조세재정연구원은 2010년에도 전체의 11.7%에 해당하는 빈곤층 가구 자녀들이 이미 급식 지원을 받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2011년 이후 전면적 무상급식으로 저소득층의 복지가 개선되는 효과는 거의 없었고 오히려 교육환경 개선 사업 예산이 줄어 공교육의 질이 하락하는 바람에 저소득층이 피해를 봤다고 지적했다.
스쿨뱅킹이나 쿠폰을 이용하면 선별적 무상급식의 부작용을 완화할 수 있다. 스쿨뱅킹을 통해 모든 가정이 급식비가 적힌 급식비 고지서를 받지만 무상급식 대상 학생의 학부모의 통장에서는 돈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는 방안도 가능하다. 쿠폰 방식은 모든 학생이 쿠폰을 구입해 급식을 사먹도록 하되 저소득층 가구에는 학교에서 쿠폰을 직접 보내주는 것이다. 또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학교 선생님들이 운영의 묘를 잘 살리면 ‘낙인 효과’를 방지하면서 선별적 무상복지 제도로 방향을 전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전면 시행 예정인 고교 무상교육 공약은 국민적 이해를 기초로 정부가 공식적으로 ‘포기하겠다’는 선언을 하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이 공약을 실천하려면 연간 2조3000억 원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서 나가야 한다. 임주영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현재 한국의 복지 지출 증가 속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빠른 수준”이라며 “한정된 재원을 효율적으로 쓰도록 복지제도를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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