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코리아 3년차/준비해야 하나 된다]
[받는 탈북민에서 주는 탈북민으로]<上>자원봉사로 편견을 넘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내가 이 사회에 한몫을 하고 있구나’라는 자부심을 느낍니다.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다른 어떤 지원을 받는 것보다 큰 버팀목이 됩니다. 지금 탈북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소속감입니다.”
지난달 24일 대전 시내 용광사에서 지역 어르신들에게 무료급식 봉사를 하는 강순희 백두한라봉사단 대표(47)는 “봉사활동 때마다 느끼는 보람과 뿌듯함 덕택에 이젠 봉사를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할 정도로 중독이 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백두한라봉사단은 탈북민 280여 명과 지역주민 100여 명으로 구성된 자원봉사단체. 이날 강 대표를 비롯한 백두한라봉사단 20여 명은 대전 한울로타리클럽 회원 20여 명과 함께 홀몸노인 200여 명에게 점심식사를 대접했다.
백두한라봉사단은 우리 국토의 끝인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온정의 손길을 베풀고 싶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2006년 5, 6명의 탈북민과 지역주민이 뜻을 모아 시작한 모임이 이젠 300명이 넘는 규모로 커졌다. 매달 한 번 지역 어르신들에게 무료급식뿐만 아니라 공연과 마술 행사로 즐거움을 안겨 드리고 있다.
강 대표는 2013년부터 대전시의 예산 지원을 받아 대전 동구에서 마을기업인 백두한라함경도 음식점도 운영하고 있다. 이곳을 즐겨 찾는 대한노인회 대전시 동구지회 정동수 회장(81)은 “일반 식당보다 더 친절하고 진심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강 대표가 봉사활동에 눈을 뜬 것은 10년 전 한 지인의 권유에서였다. 2005년 북한을 떠나 중국, 베트남, 태국 등을 거쳐 한국에 온 강 대표는 갑자기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우울증으로 고생했다. 한국에 오면 직장을 갖고 잘 정착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것. 주위의 차가운 시선은 그를 더욱 힘들게 했다.
한국장애인문화협회를 통해 시작한 봉사활동은 그랬던 자신의 가치를 일깨워준 계기였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을 살펴드리고 건물 청소를 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죠. 하지만 그분들이 반갑게 맞아줄 때 ‘이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고 삶의 힘을 얻었습니다.” 강 대표는 당시 맺었던 협회와의 인연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지역주민으로 강 대표와 함께 백두한라봉사단을 만든 심인숙 후원회장은 “열심히 살아가는 강 대표의 모습은 봉사단 내 지역주민 회원들에게도 큰 귀감”이라며 “강 대표를 따라 공부를 시작해 대학 학위를 딴 지역주민들도 있다”고 말했다. 봉사단체가 단순히 탈북민과 지역주민이 같이 모여 봉사활동을 하는 곳이 아닌 서로가 교감하고 어우러질 수 있는 장(場)이 되고 있는 것. 강 대표는 “탈북민 회원들도 자발적인 노력을 해야 한국에 뿌리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모두 회비를 내고 있다”며 “봉사활동 지역을 넓혀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강 대표의 삶은 이제 보람을 통해 뜻깊은 시간으로 변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동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2001년 홀로 중국으로 가서 식당일을 했던 그는 중국 공안에 잡혀 4번이나 북송되기도 했다. 2005년 7월 그는 공안을 피해 공장 폐허의 고철더미 밑에서 7시간을 숨었다가 옌지(延吉)에서 맨발로 6시간을 걸어 신안(新安)의 한국 선교사를 만난 뒤 새 삶을 찾았다.
신학대를 졸업하고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갖고 있는 강 대표는 사회적 기업을 창업할 계획에 부푼 가슴을 안고 있다. 그는 “상처를 안고 한국에 온 뒤 또 한번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은 탈북민들에게 단순한 지원만이 아닌 맞춤형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 동기부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누리봉사단 총무 김경희씨 “봉사는 탈북민-지역주민 이어주는 가장 좋은 길” ▼
“아직도 일부선 ‘2등국민’ 취급… 탈북민 자생단체 정부지원 아쉬워”
“처음엔 탈북민들끼리 각자 겪는 어려움을 소통으로 나누고 해결하려고 만든 단체였습니다. 그런데 단체 구성원끼리 소통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을 보고 외연을 넓히면 한국 사회에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충남 아산에서 누리봉사단 총무를 맡고 있는 김경희 씨(45)는 “봉사활동은 탈북민과 지역주민이 소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2008년 한국으로 넘어온 그는 평일엔 어린이집 교사로 생업에 종사하지만 주말엔 누리봉사단 봉사활동과 회원 간 모임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2013년 출범한 누리봉사단은 아산지역에 살고 있는 탈북민과 자녀가 함께하는 봉사단체다. 이제는 지역주민까지 참여해 회원 수가 30여 명으로 늘어났다.
누리봉사단은 하나의 큰 가족처럼 지낸다. 생일을 챙겨주고 집에 프린터가 고장 나면 새벽이라도 찾아가서 고쳐준다. 통일스포츠단에선 축구나 족구로 단합대회를 열기도 한다. 여기에 한 달에 한 번 요양원을 찾아 청소를 하고 몸이 불편하신 어르신들과 나들이를 하거나 말동무가 된다. 아산지역에 있는 충렬탑 등 안보 현장에선 정기적으로 청소활동을 벌인다.
“탈북민도 한국인인데 왜 살면서 스트레스가 없겠어요…. 직장생활, 사회생활하면서 겪는 스트레스는 똑같죠. 거기에 ‘2등 국민’처럼 바라보는 차별적인 시선까지 견뎌야 하니 오죽하겠어요. 가족과 친구가 없다 보니 터놓고 얘기할 상대가 없었기 때문에 서로 하소연하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각자의 생각이 뚜렷하다 보니 처음엔 누리봉사단 회원 간에 갈등이 많았다. 단장을 맡고 있는 임철호 씨(48)는 “북한은 아직까지 가부장적인 사회인데 갑자기 한국에 와서 양성평등 사회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탈북민의 이혼율도 높다”며 “아주 작은 부분에서 생기는 탈북민의 시련을 이해해줄 사회단체가 없다 보니 자생적인 모임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에서 원무과장으로 일하는 임 단장은 2000년 북한에서 내려온 뒤 8년에 걸쳐 북한에 남았던 가족들을 데려왔다. 이를 위해 몸을 혹사한 나머지 2011년 위암 3기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손에 멍이 없어지지 않을 정도로 운동하고 치료를 거듭한 결과 건강을 회복했다. 2010년 김 총무를 만난 그는 시련을 극복하고 얻은 새 삶의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는 일에 가치를 느끼고 있다.
김 총무는 “북한에서 버림받고 한국에서도 차별받는 현실에 많은 탈북민이 힘들어하고 있다”며 “지역사회와 탈북민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자생적인 봉사단체를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 단장은 “현재 우리의 모습이 2300만 명의 북한 주민과 하나가 됐을 때인 통일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우리가 적응하지 못하면 지금 북녘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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