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국무총리(사진)를 보좌하는 국무조정실과 국무총리비서실(이하 총리실)이 ‘충남 열공 모드’에 빠졌다. 이 총리가 회의를 주재할 때마다 “내가 충남도지사 시절에는…”이라고 운을 떼며 지시를 내리자 총리실 직원들이 총리의 지사 재임 시절인 2006∼2009년에 충남도가 추진한 주요 정책을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총리실의 A 정책관은 최근 충남도에 6, 7년 전 발간된 정책자료집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총리가 간부회의에서 충남지사로 있던 시절 성과들을 거론하자 ‘그때 충남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A 정책관이 과거 충남 도정을 공부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동료들이 “나도 한 부 복사해 줄 수 없느냐”고 요청하면서 충남도의 정책 자료집은 총리실 관료들의 ‘필독서’가 됐다.
이 총리가 ‘도지사 경험담’을 꺼낸 대표적 회의는 1일 ‘복지 재정 효율화 추진 방안’을 논의한 국가정책조정회의. 이날 이 총리는 “이명박 정부 시절 지방정부 수장으로 복지체계 문제에 대해 의지를 갖고 강력하게 정부와 대통령에게 건의해 2조4000억 원을 절감했다”라고 강조했다. 총리실 관계자는 “복지 효율화 방안을 만들면서 당시 충남도의 일부 정책을 검토했다”고 말했다.
규제 개혁과 관련해서도 이 총리는 도지사 시절 경험을 자주 말하고 있다. 취임 직후인 2월 22일 인천 남동산업단지를 방문해 “도지사 시절 50억 달러의 외국 자본을 유치했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높은 공장용지 가격이었다”라며 땅값 문제를 지적했다. 이 총리는 총리실 규제조정실에도 도지사 시절 기업유치 과정에서 겪은 일들을 거론하며 “어떤 규제 때문에 기업이 애로를 겪는지 실태를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대해 총리실 관계자는 “지방정부의 사례를 중앙 행정에 접목하는 것은 현장의 문제점을 고려해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라고 평가했다. 반면에 일선 부처의 한 고위 관계자는 “다른 지자체와 경쟁해 실적을 쌓아야 하는 지방정부와 국가 전체 정책을 조정하는 총리실은 접근 방식이 달라야 한다”라며 “일부 관료가 지나치게 ‘코드 맞추기’를 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편 총리실은 최근 모 부처의 공직자가 서울에 출장신청을 한 뒤 서울에도 세종시에도 없었던 게 발각된 것 등을 계기로 일선 부처 공직자들의 기강 잡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중앙부처 과장급 이상 공무원들에게 최근 3개월간 외부 일정과 관련해 ‘어디서 누구를 만나 무엇을 했는지’ 행적을 모두 기록해 제출하도록 지시했다. 세종시로 정부 부처들이 이전한 뒤 해이해진 공직 기강을 다잡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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