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기업 모집 실적의 부진으로 신음하던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에 활력이 돋고 있다. 6일 삼성이 평창조직위와 겨울올림픽이 열리는 2018년까지 1000억 원 규모의 후원 계약을 체결한 이후 지원 대열에 합류하려는 대기업들이 부쩍 늘고 있다.
완장 찬 이완구 총리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은 앞서 2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기업인들과의 청와대 오찬에서 “평창 올림픽이 세계인의 문화올림픽이 될 수 있도록 적극 후원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한 적이 있다. 조직위는 그동안 국내 기업들에 후원 참여를 적극 요청했지만 기업들은 여름올림픽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진다는 점과 어려운 경제 여건 등을 내세워 선뜻 손을 내밀지 않는 상황이었다.
재계와 관가에서는 대기업 군단이 움직이기 시작한 데는 박 대통령 외에 ‘부패와의 전쟁’에서 완장을 차고 나선 이완구 국무총리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 총리는 지난달 12일 전격 발표한 담화에서 방산비리, 해외자원개발 관련 배임과 국부 유출, 대기업 비자금 조성 등을 특단의 사정 대상으로 꼽았다. 다음 날엔 정부서울청사에서 제6차 평창 겨울올림픽대회 지원위원회 확대회의를 열고 “혼선이 있거나 부진했던 쟁점들을 깨끗이 정리하고 앞으로 모든 주체가 힘을 모아 대회 준비에 매진하자”고 강조했다. 이 자리엔 조양호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도 있었다. 눈 밝은 기업들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파악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을 법하다.
예산 문제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평창 올림픽은 적자구조 최소화라는 요구를 외면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평창동계올림픽 분산개최를 촉구하는 시민모임’은 그제 성명을 내고 “기업의 강제협찬 요구를 중단하고 분산개최 결단으로 1조 원의 예산을 절감하라”고 요구했다.
강원도는 이미 알펜시아리조트에 1조 원을 썼다. 하루 이자만도 1억 원이다. 겨울올림픽을 치르는 2018년에는 강원도의 빚이 2조 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도 딱 6시간짜리 개·폐회식 행사를 위해 인구 4000명인 대관령면 횡계리에 4만 명 수용 규모의 개·폐회식장을 지을 예정이다. 여기에 1000억 원이 들어가고, 대회가 끝난 뒤엔 1만5000석만 남기고 나머지 시설을 철거하는 데 또 비용이 든다. 가리왕산 활강스키장은 단 3일간의 경기를 위해 1100억 원을 들여 지었다가 경기가 끝난 뒤 1000억 원을 들여 복원할 계획이다. 아이스하키장도 1000억 원을 들여 강릉에 지었다가 경기가 끝난 뒤 해체해 원주로 이전한다. 여기에 또 2000억 원이 든다.
‘돈 먹는 평창’ 누가 책임지나
신설 경기장을 최소로 줄이고 서울 횡성 무주 등의 기존 경기장을 활용하자는 전문가와 시민단체들의 주장은 도민 반발과 조직위와 최문순 강원도지사의 원안 고수 원칙에 가로막혔다. 박 대통령도 일찌감치 “분산개최는 안 된다”며 쐐기를 박았다. 정부 관계자는 “시간도 많지 않은 상황에서 계획을 흔들면 다시 승인을 받아야 하고 준비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 팔을 비틀어 재원을 어느 정도 충당할 수는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산개최 요구를 원천봉쇄한 채 원안에만 매달린 평창 올림픽이 초래할 ‘강원도의 빚더미’는 불통정치와 무능행정의 대표 사례로 남을 것이다. 세종시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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