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로 정국이 어수선한 가운데 4·29 재·보궐선거가 엿새 앞으로 다가왔다. 선출직에 입후보하는 사람은 누구나 출사표(出師表)를 입에 올린다.
‘출사표.’ 장수가 군대를 이끌고 싸움터로 나가면서 왕에게 올리는 글이다. 중국 삼국시대 촉나라의 재상 제갈량이 쓴 전후(前後) 2개의 출사표가 유명하다. 특히 전 출사표는 이를 읽고 울지 않으면 충신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문장이 빼어나고 애국심과 죽은 선제(先帝) 유비에 대한 충성심이 가득해 출사표의 대명사가 됐다.
그런데 요즘 이 출사표를 마구 내던지고 있다. 불충도 그런 불충이 없다. 어느 신하가 우국충정의 마음을 담아 쓴 글을 임금에게 감히 던질 수 있겠는가.
출사표는 ‘바치다’ ‘올리다’와 함께 써야 어울린다. 요즘 들어 말맛에 이끌려 출사표를 던지는 사례가 너무 잦다. ‘선거전에 나선다’는 의미로 쓰는 건 그나마 나은 편이다. 기업들이 새 사업에 뛰어들 때도, 스포츠 팀이 경기에 나설 때도 출사표를 던진다.
새삼스레 ‘출사표를 던지다’를 관용구로 삼은 것을 탓할 생각은 없다. 말의 쓰임새는 변하게 마련이고, 이 또한 언중의 입말을 존중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출사표의 본래 뜻을 되새겨 함부로 쓰는 건 자제해야 옳다. 출사표의 본래 의미를 새긴다면 선출직 입후보자가 국민에게 출사표를 ‘던진다’는 것도 상식에 맞지 않다. 이럴 경우엔 ‘출마한다’ ‘출마의 뜻을 밝혔다’ 정도로 쓰면 어떨까.
‘출사표를 던지다’와 함께 사전에 올라있는 관용구가 ‘출사표를 내다’다. 두 표현이 경쟁 중이라고는 하나 이미 세(勢)는 ‘던지다’ 쪽으로 기운 것 같다. ‘던지다’가 ‘내다’보다 뜻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선거가 끝난 뒤 당선자들은 대개 “이 자리를 빌어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인사한다. 이 경우 ‘빌어’가 아니라 ‘빌려’라고 해야 맞다. 돈이나 물건, 기회나 남의 말글 따위를 취할 때는 ‘빌리다’를, 기원(祈願)하거나 사죄할 때는 ‘빌다’를 써야 한다. 즉 돈은 빌리고 용서는 비는 것이다.
이완구 총리가 결국 사퇴 의사를 밝혔다. 새로운 재상이 필요하다. 제갈량만큼은 아니더라도 국민과 국가를 위한 애국심과 충성심이 투철하고, 이를 출사표로 약속한 뒤 사심 없이 이행할 만한 재목은 어디에 있는가. 그런 재목이 있기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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