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질문은 김정은이 훌륭한 지도자가 돼야 한다는 당위성과는 전혀 다른 맥락이다. 이는 수백만 명이 굶어죽더라도 눈 깜짝하지 않고 독재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또 북한 독재체제가 앞으로 얼마나 더 지속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잣대이다.
세상에는 악당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끄떡없이 장기 집권을 유지하는 독재자가 많다. 52년간 집권한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내전 속에서도 44년간의 세습 독재를 유지하는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38년 집권으로도 모자라 94세에 재출마를 하겠다고 선포한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 이런 사례 중 으뜸은 바로 70년 동안 3대 세습을 유지하고 있는 북한이다.
장기 집권 독재자들에겐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아랍의 봄, 북한의 세습 등을 정확히 예측해 ‘정치학계의 노스트라다무스’란 말을 듣는 뉴욕대의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 석좌교수와 알라스테어 스미스 교수가 몇 년 전 그 답을 내놓았다. 이들은 사상 최악의 독재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통치의 원칙들을 도출해 2012년 ‘독재자의 핸드북’이란 저서를 내놓았다.
불행한 사실이지만, 북한 김씨 독재 일가는 이들이 도출한 장기 독재자의 ‘통치 교본’에 가장 적합하게 들어맞는 사례다. 어쩌면 70년간 축적된 김씨 가문의 ‘통치 바이블’은 미국 교수들의 연구보다 훨씬 정교하고 구체적일지 모른다.
김정은이 3대 세습 독재자로 등극한 지도 벌써 3년 반째다. 지금까지의 행보를 볼 때 김정은은 장기 독재 교본에 근거해 점수를 준다면 ‘수(秀)’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독재 체제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란 뜻이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나오고 있는 “김정은 정권은 결코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예측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결론이다. 김정은 조기 붕괴론을 예상하는 사람들에겐 근거가 많다. “북한 경제는 더는 소생이 불가능하다”, “고모부 장성택을 비롯해 수많은 고위층을 처형하는 공포통치로 민심 이반이 커지고 있다”, “북한 주민들이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본다”까지….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이런 것들은 장기 독재에 거의 위협이 되지 못한다. 현실은 가난한 나라일수록, 악당일수록 독재자가 더 오래 집권하는 경향이 있다. 시리아처럼 내전으로 20만 명 넘게 사망해도 독재자는 끄떡없다.
세계에 큰 충격을 준 장성택 처형을 놓고 보자. 독재자의 교본에 따르면 장성택은 어느 독재 국가에서 2인자로 있었든 처형됐을 것이다.
카스트로는 1959년 혁명 이후 자기가 임명했던 장관 21명 중 16명을 2년 만에 숙청했다. 그는 혁명 동지이자 2인자였던 체 게바라도 남미로 보낸 뒤 지원을 중단해 죽게 만들었다. 사담 후세인은 1979년 권력을 잡자마자 ‘혁명위원회 의장’을 포함해 동지 450여 명을 약식 처형했다. 히틀러, 스탈린, 무가베 등 무수한 독재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장기 집권을 노리는 독재자는 잠재적 도전자로 간주되면 혈육이라도 확실히 죽인다. 살려 두면 언제든지 화근이 되기 때문이다.
장성택의 죽음은 잠재적 도전자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확실한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자금의 흐름을 통제하지 못하는 독재자는 반드시 권력을 잃는다. 장성택은 국가 무역을 독점해 북한 외화 통제권의 절반 이상을 틀어쥐고 있었고 내놓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는 김정은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 같다.
독재 교본에 따르면 김정은은 노동당과 보위부, 군, 평양 시민 정도에게만 돈을 많이 풀어 충성을 이끌어 내면 오래 버틸 수 있다. 핵심 소수만 확실히 틀어쥐면 대다수 주민의 불만이 아무리 커도, 심지어 봉기가 발생해도 독재 체제는 끄떡없다. 김일성이 평양을 끔찍이 챙긴 것도, 김정일이 위기가 닥쳐오자 군부에 돈줄을 나눠 주며 ‘선군정치’를 한 것도, 김정은이 장성택의 유산을 당 조직지도부와 보위부가 나눠 뜯어먹게 놔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김정은이 숙청을 밥 먹듯 하는 것도 대신할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 충성을 이끌어 내는, 최악의 독재자들의 대표적 수법이다.
장기 독재에 필요한 행위를 적시에 정확히 할 줄 안다면 경험과 나이는 큰 문제가 아니다. 지난 3년 반 동안 김정은은 무수한 과거 독재자들의 선례를 잘 따랐다. 장기 독재에 필요한 많은 것을 움켜쥐는 데도 성공했다.
이제는 김정은 체제를 냉철하게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비로소 보인다. 역사의 무수한 피의 교훈이 북한에서만 예외일 것이란 희망은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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