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럽 위기의 진원지 그리스 위기는 과도한 연금 지출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스는 2008년 경제위기 당시 국가 재정적자의 50%를 연금 지출이 차지했다. 공적연금 소득대체율 역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인 95.7%다. 특히 문제가 되는 대상이 공무원이다. 이 나라는 노동가능 인구 5명 중 1명이 공무원(85만 명)이다. 1년에 12개월을 일하면서 14개월분 월급을 받고 최소 한 달간 유급 휴가를 즐긴다.
1981년 사회당 집권 초 30만 명에 불과하던 공무원 수는 10년 동안 10만 명이 더 늘어났다. 온갖 수당과 연금 혜택을 다 받아 챙기는 ‘공공의 적’으로 지목돼 왔지만 어느 정권도 인력을 줄이지 못했다. 2010년 구제금융 이후 민간부문에서는 150만 명의 실업자가 생겼지만 공무원들은 거의 그대로 자리를 지켰다. 그리스 국내총생산(GDP)에서 공공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50%를 넘는다.
현재 그리스에 돈을 빌려준 국제 채권단은 공무원연금 삭감과 이들에 대한 임금 삭감을 개혁 영순위로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 정부는 이를 거부하고 있어 추가 구제금융 72억 유로를 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리스 정부가 공무원들에게 임금과 연금을 주기 위해 국민들의 실업복지기금 같은 사회보장기금에까지 손을 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탈리아의 경우도 1992∼2011년 다섯 차례에 걸쳐서 연금 개혁을 단행했지만 모두 미봉책에 그쳐 지금도 65세 이상 연금 지급액이 공공지출의 25%에 이른다. 이 나라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20여 년간 지속된 고도 성장기에 사회 각계에서 분출된 복지 욕구를 연금 인상으로 해결해왔다. 1990년대 들어 연금 지출액이 공공지출의 3분의 2를 차지하자 정부 재정 적자를 GDP의 3%로 제한하는 유럽통화동맹(EMU)에 가입하기 위해 연금 개혁에 나섰었다. 2000년대 들어서 연금 수급 연령을 57세에서 65세로 올리고 수령액도 월 소득의 80%에서 60%로 줄이는 안을 내놓았지만 노동자 수백만 명이 파업에 나서고 시민들까지 동참해 개혁은 좌초됐다.
스페인 정부도 2013년부터 2027년까지 단계적으로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를 65세에서 67세로 늦추는 내용의 개혁을 단행했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소 연금적립 기간 15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연금 산정 기준을 ‘정년 이전 15년’에서 ‘정년 이전 25년’으로 10년 연장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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