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러시아는 종전 70주년을 맞아 ‘대조국전쟁(독소전쟁의 러시아식 표현) 전승기념절’ 행사를 개최한다. 약 3000만 명으로 추정되는 큰 희생을 치르며 전 세계를 나치 독일의 침공에서 구해냈다고 믿는 러시아에선 그만큼 의미가 큰 행사다.
한국은 이 행사에 박근혜 대통령 대신 윤상현 대통령정무특보를 특사로 보낸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로 제재를 받고 있고 대다수 서방국가가 불참하는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정이다. 알렉산드르 티모닌 주한 러시아대사는 지난달 한국 기자들을 만나 “박 대통령이 일정 때문에 불참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 결정에 불만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
정통한 러시아 소식통은 “크렘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한국 특사의 면담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 특사의 방러 자체를 반대하겠다’는 선언까지 하려 했다”고 심각했던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로 러시아는 박 대통령 불참 결정 이후 한국과의 핵심 협력 사업 일부에 대해 이유 없이 어깃장을 놓아 사업 발표가 지연되고 있다. 간접적으로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최근 한국 정부는 과거사 대처 등 대일 외교 난맥상으로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대미, 대일 외교라는 ‘뜨거운’ 이슈에만 빠지면 다른 주요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한 중견 외교관은 “냉전 시절에 비해 쇠락했지만 러시아는 세계지도를 펴놓고 미국과 경쟁하던 나라”라며 “방코델타아시아(BDA) 대북 금융제재 해결 때 중앙은행을 동원해 미국과 중국의 고민을 해결해준 것처럼 러시아는 결정적일 때 한 방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이번 ‘신(新)실용외교’ 시리즈를 통해 한국 정부가 틀에서 벗어나 주도적으로 상황을 타개하는 외교를 펼치라고 주문했다. 이는 대일 외교만 신경을 쓰라는 건 아니었다. 지금껏 일본의 과거사 언급을 기다리다가 뒤늦게 비난하기만 하는 ‘리액티브(반응) 외교’로 난맥상을 자초한 게 아니었던가. 과감하고도 능동적으로 판을 만들지 않으면 제2, 제3의 외교 난맥상은 되풀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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