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12층 1208호 조사실.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 손영배 서울북부지검 형사5부장(43)과 마주한 홍준표 경남지사(61)는 20여 년 전의 화려했던 ‘모래시계’ 검사가 아니었다. 불과 한달 전만해도 대권 도전설이 나오던 ‘잘 나가는’ 정치인이었지만 이날은 14년 후배 검사 앞에 앉은 한 명의 피의자일 뿐이었다.
“어버이날인데 고생 많습니다. 검찰청으로 갑시다.”
홍 지사는 이날 오전 7시 55분 서울 송파구 잠실동 아파트를 나서며 취재진에게 활짝 웃는 얼굴로 말을 건넸다. 늘 붉은 계열 넥타이만 매는 그는 이날도 핑크색 넥타이를 매고, 곤색 정장 왼쪽 가슴에는 연분홍색 카네이션을 달고 있었다. 검찰 조사를 앞두고 있지만 어버이날을 챙길 만큼 여유가 있음을 보여주려는 듯했다. 검사복을 벗은 지 20년 만에 피의자로 검찰에 출두하는 소감을 묻자 ‘허허’하고 웃어넘겼다.
홍 지사는 검은색 K9 승용차에 몸을 싣고 조사실이 있는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근처 변호사 사무실로 향했다. 차량 이동 동선은 실시간으로 방송을 통해 생중계됐다. 홍 지사는 검찰 조사에 동행할 이혁 변호사 등과 1시간 30여분 동안 마지막 회의를 한 뒤 조사실로 향했다. 집에서 나올 때 가슴에 달고 있던 카네이션도 뗀 상태였다.
홍 지사는 오전 9시 54분 서울고검에 도착해 취재진에게 “이런 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리게 된 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검찰에 오늘 소명하러 왔다”라고 말했다.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다. 1억 원을 건넸다는 윤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을 측근을 통해 회유한 사실이 있는지를 묻자 “없습니다”라고 짤막하게 말한 뒤 곧바로 12층 조사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1208호 조사실에는 홍 지사를 직접 신문할 손 부장검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특별수사팀에 파견된 손 부장검사는 대구 경신고-연세대 법대 출신으로 ‘힘 센’ 피의자에게 기가 눌리지 않는 강골이다. 2006년 서울고법 부장판사 구속으로 이어졌던 법조비리 사건을 수사했고, 이듬해엔 ‘신정아 사건’ 당시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수사에 참여했고, 2009년엔 부녀자 7명을 살해 한 연쇄살인범 강호순을 직접 신문하기도 했다.
손 부장검사의 안내로 홍 지사가 조사실 소파에 앉자 문무일 특별수사팀장(검사장)이 들어와 10분 정도 티타임을 가졌다. 고려대 선후배인 홍 지사와 문 검사장은 11년 전 노무현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 수사 때 ‘제보자’와 ‘수사검사’의 인연도 있다. 당시 문 검사장은 특검에 파견돼 있었고 홍 지사는 노 전 대통령 측의 은닉 자금으로 보인다는 100억 원짜리 양도성예금증서(CD)를 들고 특검을 찾아간 적이 있다.
홍 지사는 이날 검찰이 내놓은 커피 대신 물을 달라고 해 물을 마셨다. 문 검사장이 조사실을 나가고 오전 10시 17분부터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됐다. 손 부장은 홍 지사에게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고 이름과 나이, 직업과 주소 등을 묻는 인정신문을 시작으로 1억 원 수수 혐의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손 부장검사 옆에는 평검사 1명이 보조했고, 홍 지사 왼쪽에는 수사관 1명이 앉았다. 홍 지사 뒤에는 이혁 변호사가 배석했다.
홍 지사는 낮 12시 15분까지 2시간 동안 조사를 받고 점심시간을 가졌다. 보좌진이 대기하는 청사 내 다른 층 공간으로 가서 별도로 식사를 한 뒤 조사실로 돌아갔다. 오후 1시 25분부터 재개된 조사에서 홍 지사는 묵비권을 쓰지 않고 미리 준비한 여러 소명자료를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방어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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