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김무성이 사는 법 “정치는 딜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7일 21시 38분


개혁같지 않은 공무원연금안 재·보선 완승 3일 만에 여야합의… 패장 문재인을 승자로 만들었다
대통령 위한 업적이 필요했나… 목적을 위해서라면 강경좌파에 뭐든 양보할 건가
“정권 바뀌면 못한다”는 애국심, 미래권력 잡을 수 있겠나



김순덕 논설실장
김순덕 논설실장
4·29 재·보선이 새누리당의 완승으로 끝났을 때 이제 ‘무대(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시대’가 열리는 줄 알았다. 승리를 확인한 뒤 ‘오버’하지 않고 “당청(黨靑)은 한몸이고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고 밝힌 것도 모처럼 보는 상남자의 모습이었다.

3일 뒤, 김무성은 ‘공무원연금 개혁 및 국민연금 강화를 위한 양당대표 합의문’에 서명함으로써 스스로 3일 천하를 끝내버렸다. 그날 사진을 보면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선거 패장이 아니라 완전 개선장군이다.

합의문 내용이 주요 언론의 지적대로 맹탕개혁인지, 김무성의 자평처럼 잘된 안(案)인지는 관점과 진영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합의문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복기해 보면 “이건 무효다” 소리가 나올 만큼 꼼수가 난무했다. 김무성이 “안 된다”고 밝혔던 사안마다 양보와 포기를 거듭한 건 경이를 넘어 경악할 정도다.

특히 합의안을 만든 사회적대타협기구에 대해 김무성은 당초 “소관 상임위 논의 과정에서 필요성이 인정되면 구성하는 것”(작년 11월 7일)이라고 ‘공적연금강화를 위한 공동투쟁본부’(공투본) 앞에서 분명히 말한 바 있다. 작년 말 여야가 개혁특위에 합의하면서 이 기구를 두는 건 물론 공투본까지 참여하게 만든 건 시작에 불과했다.

“사회적 합의를 이루려면 여야가 각각 개혁안을 내놓고 논의 과정을 국민에게 공개한 뒤 심의 과정에서 이해당사자와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합당한 방법”(작년 12월 4일) “특위가 있는데 파생기구(실무기구)를 (연장해) 두는 건 안 맞다”(4월 1일) “개혁 당사자들과 합의 보면서 개혁이 가능한가” “근본적 개혁을 위해선 국민과의 형평성을 꼭 제고해야 하고 그것이 바로 구조개혁”(4월 2일)이라고 하더니 판판이 다 뒤집힌 것이다.

김무성은 “이번에 국민 뜻을 거스르면 정치가 설 땅이 없다”(3월 26일)고도 했다. 국민 과반수가 찬성하지 않는 개혁안이라는 게 여론조사 결과다. 그런데도 당정청 회동에서 ‘주어진 여건 속의 최선의 안’이라며 특히 최초의 사회적대타협기구에서 전원 합의한 데 큰 의미를 부여한다는 입장을 끌어냈으니 놀라운 리더십이 아닐 수 없다.

대체 그는 왜 이런 개혁 같지 않은 개혁안을 기를 쓰고 밀어붙이는 걸까.

적잖은 사람들이 대통령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권력의 속성을 가까이 가면 타 죽는 것이라고 갈파한 그다. 대통령 후보가 되기 위해선 박근혜 대통령과 맞서면 안 된다는 걸 모를 리 없다. “연금 개혁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발언도 작년 10월 개헌 봇물 발언을 했다가 황급히 꼬랑지를 내린 직후에 나왔다. 현재권력이 자신을 콕 찍어 4월 국회 처리를 간곡히 부탁했는데 해내지 않으면 대통령이 멀어진다는 생각을 안 했을 리 없다.

“원래 정치가 딜 아니냐.” 작년 말 연금 개혁과 해외자원비리 국정조사를 놓고 여야 빅딜설을 묻는 질문에 김무성이 한 말이다. 정치는 협상과 타협이고, 최선이 안되면 차선이라도 택해야 한다는 그의 지론도 맞다. 해결사라는 별명도 그래서 나왔을 터다.

하지만 지금의 개혁안은 “(새누리당) 원안대로 통과된다 해도 몇 년 뒤 또 개혁안이 나올 정도로 점진적으로 만든”(작년 11월 25일) 것보다 개혁적이지 않다. 국민연금 연계까지 합의한 건 사실상 세금 더 걷자는 의미로 우파정부 정신과도 어긋난다. 더구나 그는 강경투쟁을 일삼는 좌파 법외노조에 무릎을 꿇고 법안을 만드는 것까지 허용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딜’할 수 있는 정치인이 바로 김무성이 아닌지 겁이 더럭 난다.

본인이 밝힌 이유는 애국심이었다. 선거를 생각하면 바보 같은 일이지만 “다음 정권은 어느 정권이 들어설지 모르지 않느냐”(작년 11월 25일)며 지금 공무원연금 개혁 안 하면 못한다는 말엔 진정성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명리학자인 조용헌은 그의 사주에 물과 불이 있다며 용칠호삼(龍七虎三)이라고 했다. 용은 물 같아서 여간해선 대결을 피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호랑이는 공격한다. 물대포 아닌 불대포라는 얘기다.

현재권력은 원칙을 신줏단지처럼 붙드는 바람에 되는 일이 없었다. 미래권력을 꿈꾸는 김무성은 아직까진 물이다. 국민은 딜을 해서라도, 설령 원칙을 양보해도 일이 되게 만드는 미래권력을 택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김무성#정치#딜#공무원연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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