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증 첨부 규정없어… ‘눈먼 돈’ 한해 8290억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1일 03시 00분


개인 쌈짓돈처럼 유용 논란 ‘특수활동비’ 예산 실태는

정부 예산 중 매년 8290억 원가량이 영수증이 필요 없는 ‘특수활동비’ 명목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20일 확인됐다. 현행법상 특수활동비 사용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불법이 아니지만 각 정부부처의 장이나 국회의원 등이 ‘눈먼 돈’으로 전용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2013년도 국가결산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2013년도 전체 예산 342조5000억 원 중 8728억7200만 원이 특수활동비로 책정됐다. 이 중 8294억8400만 원이 집행됐다.

○ 영수증 첨부 규정 없어

특수활동비를 사용한 23개 기관 중 국가정보원이 4566억2900만 원으로 가장 많았고, 국방부(1634억1800만 원) 경찰청(1180억3400만 원) 등의 순이었다. 청와대는 256억6900만 원을 사용했고, 정부 예산을 심사하는 국회도 87억7900만 원을 영수증 없이 사용했다.

특수활동비는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 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국정수행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로 규정돼 있다. 이 때문에 모든 정부 부처에 특수활동비가 편성되는 게 아니라 국정원, 국방부, 법무부, 경찰청, 국세청과 같은 정보수집 및 사건수사 기관이 주로 사용한다. 국회의 경우 ‘기타 이에 준하는’ 경우에 해당된다고 한다.

문제는 영수증 첨부가 필요 없다는 점. 기획재정부가 마련한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 세부지침’에 따르면 업무추진비는 카드 사용이 원칙이고 결산 시 사용 내역에 대한 증빙자료를 제출해야 하지만 특수활동비는 특별한 규정이 없다.

이 때문에 현금 사용이 가능하고 건별로 결산하는 게 아니라 총액으로 결산이 이뤄지면 그만이다. 법에서 정한 정보, 사건수사 등의 목적이 아닌 개인 용도로 전용해도 이를 걸러낼 방법이 없는 셈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특수활동비의 경우 ‘총액 편성, 총액 결산’이기 때문에 결산 때 세부 내역까지 상세히 들여다보지 않는다”고 했다.

○ 여야, 뒤늦게 “개선안 필요” 목소리

특히 국회의 특수활동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성완종 리스트’에 1억 원을 수수한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은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국회 상임위원장을 지낸 새정치민주연합 신계륜 의원은 자신들의 비리 의혹과 관련해 특수활동비를 사적 용도로 사용했다는 취지로 해명해 논란에 불을 지폈다.

특수활동비는 국회 의장 및 부의장, 여야 원내대표, 상임위원장 등에게 매월 지급된다. 국회 운영위원장을 겸임하는 여당 원내대표는 매달 2300만 원을 받고, 분기별로 2000만 원이 지원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국회의장이 관례상 매월 500만 원을 별도로 지원한다고 한다. 원내대표는 이 돈을 원내부대표단 소속 의원 등에게 개인당 평균 100만 원씩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회 상임위원장들도 매달 600만 원 안팎의 활동비를 받는다고 한다.

뒤늦게 여야는 자정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 김태호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국회는 영수증을 첨부하여 인터넷에 공개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유승민 원내대표도 이날 정의화 국회의장을 만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국회 특수활동비를 전체적으로 점검하고 투명성을 제고하는 제도개선대책단을 발족하겠다”고 밝혔다.

고성호 sungho@donga.com·홍정수 / 세종=손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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