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만든 시행령에 대한 국회의 수정 요구 권한을 대폭 강화한 국회법 개정안이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국회 전횡법이 만들어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청와대가 국회법 개정안의 위헌 가능성에 대해 강한 우려를 밝힌 데 이어 행정 부처들도 적극적으로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 “국회 만능주의…제2의 국회선진화법 될 우려”
국회법 개정안 98조 2항은 ‘대통령령 등 행정입법이 법률의 취지나 내용에 합치되지 않다고 판단되면 국회 상임위가 해당 행정기관의 장에게 수정이나 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기관장은 수정 변경을 요구받은 사항을 처리한 뒤 결과를 상임위에 보고해야 한다. 당초 여야 원내대표 합의문에는 ‘수정 요구를 받은 행정기관은 지체 없이 처리한다’고 돼 있었지만 국회 운영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위헌 우려를 반영해 ‘지체 없이’라는 표현은 삭제했다.
그러나 새누리당 내에서는 여전히 위헌 요소가 강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진태 의원은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회 만능주의, 행정부에 대한 국회의 지나친 간섭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본회의 표결에서도 새누리당 의원 12명이 반대하고 20명은 기권했다.
반대표를 던진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삼권분립이 훼손돼 위헌 소지가 있는 데다 운영 과정에서 악용되면 제2의 국회선진화법이 될 수 있다”며 “수정·변경을 요구하려면 상임위에서 합의해야 하기 때문에 상임위도 제대로 운영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도 판사 출신인 박범계 의원이 기권했다. 박 의원은 페이스북에 “시행령이 모법의 위임 범위를 일탈하는 사례가 많더라도 국회법으로 시행령 위법 여부를 심사해 수정을 요구하고 정부가 따르게 강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 법제처장 “사법권 침해로 볼 수 있어”
행정 부처들은 국회법 개정안이 정부와 법원의 권한을 침해해 위헌 소지가 있고 정부의 효율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제정부 법제처장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국회법 개정안의 위헌 소지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는 “이번 국회법 개정안은 헌법이 의도하지 않은, 헌법에 규정되지 않은 행정에 대한 입법의 강력한 견제장치여서 꼭 필요하다면 헌법에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시행령이 모법에 위반되는지에 대한 판단은 입법부와 행정부가 다를 수 있어 법원에서 판단하라는 게 헌법의 규정”이라며 “그런데 이번 국회법 개정안은 위반 여부를 국회가 판단하겠다는 뜻이어서 사법권 침해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도 내부 검토 결과 위헌 소지가 있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법무부 관계자는 “헌법상 행정부와 대법원에 각각 부여된 행정입법권과 심사권을 국회가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는 “정책 개발과 추진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각종 경제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회가 시행령에도 과도하게 개입하면 정책 추진이 어렵다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국회법 개정안 때문에 경제 정책이 적기에 시행되지 못하면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 법조계 “국회의 월권” vs “정당한 권리”
법조계에서는 입법부가 행정부를 상대로 ‘입법 지도’를 하려는 위헌적인 발상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시행령이 법률의 취지에서 다소 벗어나더라도 이를 국회가 직접 통제하는 것은 월권”이라는 지적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적으로 이야기할 때 ‘요구’라고 하면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으로 본다”며 “국회의 요구에 정부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절차 없이 국회가 일방적으로 정부의 시행령 제정에 대한 권한을 침해한다면 위헌 소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출신인 윤홍근 변호사는 “국회 뜻대로 바꿀 수 있다면 그건 대통령령이나 국무총리령이 아닌 ‘국회령’”이라고 비판했다.
국회의 정당한 권리라는 의견도 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위헌·위법한 행정명령의 시행에서 오는 국민적 혼란을 사전에 막기 위해 국회가 시정을 요구할 수 있게 한 것”이라며 “시행령 수정을 강제할 권한이 명시된 것도 아니어서 위헌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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