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어제 오전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의 국회 처리를 위해 야당과 ‘거래’한 국회법 개정안은 정부를 식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황당한 법이다. 국회법 제98조의2 개정안은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 등 행정입법에 대해 국회가 수정 및 변경을 요구하면 소관 행정기관장은 이를 처리하고 보고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당초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공무원연금법과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수정을 연계 처리할 것을 요구했지만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국회는 시행령 수정을 요구할 법적 근거가 없으니 국회법을 개정해 법적 근거를 만들자”고 합의해 줌으로써 결국 국회법을 바꾸게 된 것이다.
유 원내대표는 법률의 취지와 내용에 어긋나는 경우에만 시행령 수정을 요구하는 것이지 모든 행정입법에 간섭하는 게 아니어서 문제될 게 없다고 주장하지만 착각이고, 순진한 생각이다. 경제활성화나 민생 법안이 국회에서 발목을 잡힐 경우 정부가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으로 재량을 행사해 일을 처리할 수 있었으나 앞으로 야당은 이런 조치를 막을 공산이 크다.
국회 몸싸움을 막기 위해 새누리당이 주도해 만든 이른바 국회선진화법도 야당의 ‘법안 발목잡기’에 악용되는 바람에 지난해 여의도는 150일간 법안 처리 한 건 못하는 ‘식물국회’가 됐다. 이제는 야당이 정부의 정책집행 과정에서까지 ‘상왕’ 노릇을 할 수 있는 조항을 만들어줬으니 ‘식물정부’가 일상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어제 김성우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 “정부가 만든 행정입법 내용을 입법부가 직접 심사하고 그 변경까지 할 수 있도록 국회법을 개정한 것은 법원의 심사권과 행정부의 행정입법권 침해”라며 강력 반발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헌법상 삼권분립의 원리에 따라 국회는 법률을 만들고, 행정부는 이를 집행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하위 법령인 시행령 시행규칙 등으로 만드는 위임입법권을 갖고 있다. 명령이나 규칙이 법률에 위반된다면 재판을 통해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심사하게 돼 있다. 국회는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 등이 법률과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단할 경우 법률로 보다 명확히 규정할 수는 있지만 이를 고치라고 직접 행정부에 지시할 순 없다. 제정부 법제처장도 이번 개정안에 대해 “헌법의 범위를 넘어서 행정부를 통제하려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식물국회도 모자라 식물정부를 만드는 위헌적 법안에 동의해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유 원내대표는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청와대는 국회법 송부에 앞서 다시 한번 면밀히 검토해줄 것을 국회에 요구하면서 “여러 가지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으나 모호하게 말할 일이 아니다. 헌법 제53조에 따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방침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비주류 지도부와 충돌할 수 있다는 정치적 부담 때문에 거부권 행사를 포기한다면 두고두고 행정부를 ‘국회의 시녀’로 만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대통령은 국회에 다시 한번 숙고를 요청하되 그래도 안 될 경우 거부권을 통해 국회의 입법독재를 견제할 책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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