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의 정·관·재계 원로들이 참여한 ‘한일 현인(賢人)회의’ 인사들이 어제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양국 정상의 ‘큰 결단’을 요청했다. 이달 22일 한일 수교 50년 기념일과 8·15 종전(終戰) 70년 기념일을 앞두고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촉구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과거사 문제의 바람직한 해결을 통해 양국 관계를 보다 건강한 바탕 위에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고 지금까지의 입장을 반복하면서도 한일 원로들의 제언을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양국 재무장관과 통상장관, 국방장관이 경제·안보 문제를 논의하는 등 한일관계가 과거사와 별도의 투트랙으로 가고 있지만 본격적 관계 개선과는 거리가 멀다. 2013년 2월 취임한 박 대통령이 아베 신조 총리와 2년 3개월이 넘도록 양자 정상회담을 갖지 않은 것만으로도 정상적인 외교관계로 보기 어렵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와 중국의 급부상으로 동북아 외교안보 질서가 요동치고, 경제 분야에서도 한일 간 협력할 사안이 많은 상황에서 한일관계를 이대로 방치하면 두 나라 모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양국 관계 악화의 책임이 과거사의 잘못을 외면하는 아베 정권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이 일본의 태도만 비판하면서 관계 악화가 초래할 부작용을 외면하는 것도 종합적 국익의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한일관계 냉각이 길어지면서 동맹국인 미국에서 일본의 ‘과거사 정당화’에 대한 비판 못지않게 한국의 ‘과거사 집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박 대통령은 한일 원로들에게 “일본군 위안부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위안부 문제를 경시할 순 없지만 ‘위안부 문제의 해결 없이는 한일관계 정상화도 없다’는 식의 경직된 이미지가 굳어지면 박 대통령은 물론이고 한국 정부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아베 총리도 한일관계 정상화에 걸림돌이 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과거사 문제 등에서 한국이 어느 정도는 수긍할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한일관계 정상화를 소망하는 양국 원로들의 충정에 함께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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