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협상이 일단 시작되면 합의를 향한 진행을 지연시키는 것이 상대방의 입장을 약화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믿는다.” 1951년 7월 10일 개성 봉래장에서 처음 열린 정전회담에서 유엔군 측 수석대표로 참석했던 C 터너 조이 제독의 회고다. 김용호 교수는 ‘북한의 대외협상 행태분석’(2000년)에서 협상 초기 북한은 높은 요구와 원칙 제시로 주도권 장악을 시도하고 최종 단계에선 합의문 작성을 종결로 보지 않고 합의사항 이행 과정에서 새로운 요구를 제시한다고 분석한다.
▷여야는 지난달 29일 오전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국회법 개정안을 슬쩍 끼워 넣었다.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에 조사1과장을 검찰 서기관급으로 보임토록 한 조항을 수정하지 않으면 공무원연금법을 처리할 수 없다는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의 요구 때문이었다. “시행령을 국회가 법으로 수정할 수 없지 않느냐”며 난색을 표하던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결국 “공무원연금법 처리를 위해” 국회가 행정부에 시행령 수정을 사실상 강제할 수 있는 국회법을 먼저 개정하는 데 합의해줬다.
▷정부의 각종 시행령에 대해 야당이 시비를 걸며 행정 집행을 마비시키고 국회의 법안 처리와 연계해 식물국회를 상시화할 수 있는 국회법에 길을 터준 셈이다. 공무원연금법 통과 조건으로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로 인상을 덧붙였던 여야 5·2합의안이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로 브레이크가 걸린 뒤 이 원내대표의 타결 조건은 기초연금, 법인세 인상,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해임으로 거듭 추가됐다.
▷새누리당에서는 “이 원내대표의 드러눕기식 협상술에 지쳐 버린 유 원내대표가 1000원짜리 얻어 가려던 상대에게 1000만 원짜리를 내준 꼴”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박 대통령이 어제 “국회법 개정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언함에 따라 여야 간 충돌이 예상된다.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의 후손인 이 원내대표는 새정치연합 내에서도 강성으로 알려져 있다. 추후 협상에서 이 원내대표가 또 어떤 깜짝 카드를 내밀지 유 원내대표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봐야 할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