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한 뒤 어떤 역할을 할지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윤태영 씨의 회고록 ‘바보, 산을 옮기다’(문학동네)에 그런 생각의 일단이 드러난다.
이 책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2008년 18대 총선에서 노무현 정부 출신 인사들이 PK(부산-경남) 지역에 출마해 당선하는 데 한몫하고 싶어 했다. 그는 “…전면에는 안 나서더라도 PK에서 한 축을 만들겠습니다”, “사실 내 생각은 참여정부에 몸담았던 사람들을 활용해 영남에서 거사를 해보자는 것이었는데…”라고 말했다. 2006년 4월 청와대에 (대통령 후보) 경선 캠프 참모진을 부른 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하며 “그 다음에 자네들이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다. 어떤 명분을 가진 정파로 발전하게 될지…”라고도 했다.
종합해 보면 이런 얘기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청와대 참모들이나 장·차관(급)을 지낸 인사들을 PK에서 당선시켜 당내 한 정파를 이뤘으면 했다.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 내부에서 노 전 대통령과 거리를 두려는 분위기가 짙어질 때였다. 그는 외롭고 어느 정도 울분에 차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 구도 타파’라는 가치를 좇는 측근들이 당내에서 한 정파로 커 가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짜릿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 책에 국한해 보면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을 비판하고 손가락질하기 시작하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명분을 가진 정파”를 머릿속에 그렸다는 건 당내 한 그룹을 형성하겠다는 뜻이지 완전히 등을 돌리겠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는 “당신들과 나(우리)는 다르다. 그렇지만 함께 간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듯하다.
6주기가 막 지난 노 전 대통령을 새삼 길게 이야기한 까닭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생각나서다. ‘노무현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서다.
문 대표는 지난달 14일 ‘당원 여러분께 드리는 글’이라는 메시지를 발표하려다 주변의 만류로 보류했다. 그러나 그 내용은 다 알려졌다. 문 대표는 부인하지 않았다. 그 글에서 문 대표는 4·29 재·보궐선거 참패를 책임지라고 요구하는 당내 의원들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지도부를 무력화시켜 기득권을 유지하려거나 공천 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사심이 있다면…”, “당이 어려운 틈을 이용해 기득권과 공천권을 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정치를 안 하면 안 했지, 당 대표직을 온존하기 위해 그런 부조리나 불합리와 타협하고 싶지 않다.”
김한길 전 공동대표와 박지원 전 원내대표를 ‘비호감’이라 여기고 그들보다 문 대표를 좀 더 우호적으로 생각하는 정치권 지인은 최근 이렇게 말했다. “(문 대표의) 그 글을 읽었는데 걱정이다. 문 대표가 비노(비노무현) 진영을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고 ‘틀렸다’고 보는 것 같다.” 상대가 틀렸다면 자신은 옳다는 말이 된다. 그러면 같이 가기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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