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 부족으로 물 소독 못하자 수돗물 먹고 배탈나는 사고 빈발
어쩔수없이 남포∼평양간 관 연결… 바닷물 끌어와 수돗물 소독에 사용
덕분에 염소냄새 없어 물맛 좋아져
“어, 곱등어(돌고래)가 살아 있네.”
화면을 되돌려 봐도 분명 곱등어가 맞았다. 미국 CNN 방송이 지난달 평양에 들어가 찍어온 영상 중에는 능라인민유원지 곱등어관의 모습도 담겨 있었다.
지난해 말 한국의 일부 언론에서는 김정은이 야심 차게 만든 곱등어관에서 스파르타식 훈련과 수질 오염 등으로 인해 돌고래들이 폐사했다는 소문이 평양에 돌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래서 돌고래 대신 여성들이 수중발레 공연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 죽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혹은 그 보도 이후에 돌고래를 다시 사왔을지도 모른다. 북한은 자신들에 대한 잘못된 소문을 불식시키려 지난달 CNN 방송을 불러 여기저기를 보여주었다. 곱등어관을 구경시켜준 속내도 어쩌면 “봐, 돌고래가 살아 있잖아” 하는 메시지를 남쪽에 보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돌고래가 살아 있다고 써준 한국 언론은 당연히 없다.
북한 안내원은 CNN 특파원에게 “대북 제재 때문에 돌고래를 사올 수 없어 어려움을 느낀다”고 했다. 서울에선 8억 원이 넘는 돈을 들여 돌고래를 바다로 되돌려 보내는데, 평양에선 돈이 있어도 돌고래를 살 수 없다고 푸념을 한다. 참고로 훈련되기 전 돌고래는 1마리에 2만 달러, 훈련되면 20만 달러 정도에 거래된다고 한다.
돌고래를 찾다 보니 내가 본 어느 돌고래 쇼장보다 훨씬 큰 수조가 눈에 들어온다. 그 넓은 수조엔 바닷물이 찰랑찰랑 가득 차 있었다. 이 바닷물은 2012년 남포에서 평양까지 60여 km 구간에 주철관을 묻고 끌어온 것이다. 그때도 곱등어 쇼를 위해 막대한 돈을 들여 바닷물을 평양까지 끌고 왔다고 보도한 언론들이 있었다.
하지만 바닷물을 평양까지 끌고 온 목적은 곱등어관에 공급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평양 시민들의 식수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과거 평양도 수돗물 소독에 외국과 똑같이 액체염소와 표백제를 사용했다. 하지만 북한의 경제난 때문에 염소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수돗물을 마시고 배탈이 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평양 상하수도관리국 연구사들은 바닷물을 활용한 소독방법을 연구 도입했다. 소금기가 많은 바닷물을 전기 분해하면 강력한 살균력을 갖는 산성수와 알칼리수가 나오는데, 이를 민물에 섞어 소독제로 활용하는 것이다.
새 소독방법을 도입하고 바닷물을 남포에서 끌고 오기까지 연구사들은 국가 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아 엄청나게 고생했다고 한다. 북한이 많이 부패돼 있는 와중에도, 시민들을 위해 뇌물 받지도 못하는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양심적 과학자들이 있다는 점이 반갑다.
하지만 소독을 잘한다고 해서 깨끗한 물이 모든 평양 시민에게 공급되는 것은 아니다. 수도관이 워낙 노후해 장마철에 흙탕물이 나오는 지역도 많다. 그래서 요즘엔 평양에서 수도관 교체 공사도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물론 아직은 멀었다. 평양에서 아파트가 고층일수록 가격이 떨어지고 20층 이상이 되면 입주하지 않으려 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가장 큰 원인도 바로 수돗물 때문이다. 펌프 수압을 고층까지 충분히 올려 보내는 걸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통일거리나 광복거리의 고층 아파트들은 한 달에 한 번 수돗물이 나올 때도 적지 않다. 그나마 평양이니 이 정도지, 지방은 수질이나 수압이나 더 논할 형편이 안된다.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바닷물로 소독한 평양의 수돗물은 어쨌든 수돗물 특유의 염소 냄새를 없애버렸다. 지난해 탈북한 평양 시민에게 물어봤더니 “염소 냄새가 없어져 물맛이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또 전해수를 활용해 수영장 물을 소독하니 눈이 시리지도 않다고 한다.
바닷물 소독방법의 장단점이나 비용에 대해선 좀 더 따져봐야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염소를 활용한 전통적인 소독방법에 비해 최근에 도입되기 시작한 기술이라는 점이다.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있다. 매우 궁박한 처지에 이르게 되면 도리어 펴나갈 길이 생긴다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서울의 수돗물에선 아직 없애버리지 못하고 있는 염소 냄새를 평양의 수돗물에선 없애버렸다.
이걸 보니 유선전화망이 열악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곧바로 휴대전화 시대로 넘어간 아프리카의 사례가 떠올랐다. 북한도 휴대전화 붐이 그렇게 일어났다.
어쩌면 북한에서 모자라다는 것, 없다는 것이 곧바로 최신 기술을 도입할 수 있는 바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자금과 의지가 따라야 함은 필수불가결적 조건이다. 허나 여전히 돌고래쇼나 양식 따위에 집착하는 김정은을 떠올리면 다시 답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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