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직후였던 2008년 10월 1일. 러시아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이명박 대통령은 곧장 청와대 서별관에서 열리고 있던 거시경제정책협의회에 달려가 “국민에게 위기 극복의 확신을 심어줄 수 있도록 한목소리를 내달라”고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 지하별관에 비상경제상황실을 설치하고 ‘선제적이고 과감하며 충분하게’ 금융위기 극복 원칙을 밀어붙였다. 예고 없이 닥친 위기 앞에 주춤거리며 소통에 실패하는 바람에 벼랑 끝까지 내몰렸던 5개월 전 광우병 사태에 대한 반성에서였다.
메르스 부실대처로 방미 연기
지난해 세월호 침몰 앞에 우왕좌왕했던 박근혜 정부는 메르스 사태에서는 무엇이 달라졌나. 바레인에서 농작물을 재배하던 1번 환자에 대해 병원 의사가 질병관리본부에 확진 검사를 요청했으나 질병관리본부는 “바레인은 메르스 발생국이 아니다”며 거부했다. 첫 환자 발생지인 평택성모병원에 삼성서울병원이 거점으로 추가되고 전파 경로가 다양해지는데도 보건복지부는 “전파력이 크지 않다”며 병원 명단 공개를 거부하다가 방어선이 계속 뚫렸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세월호 7시간’을 둘러싼 논란을 겪고도 배운 게 없는 모양이다. 메르스에 대해 질병관리본부의, 보건복지부의 안이한 서면보고만 받다가 6일 만에 처음으로 장관 대면보고를 받았다. 첫 확진환자가 나온 지 열흘이 넘은 6월 1일에야 “초기 대응에 미흡한 점이 있었다. 국가적 보건역량을 총동원하기 바란다”며 처음으로 공개적 언급을 했다. 직접 메르스 대책회의를 소집한 것은 그로부터 다시 이틀이 지나서였다.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지 않는 사이 메르스 대응 컨트롤타워는 질병관리본부, 보건복지부, 민관종합대응TF 등으로 수시로 바뀌었다. 청와대는 최경환 경제부총리를 컨트롤타워로 설명했는데, 최 부총리는 보건복지부를 창구로 지목하는 일도 벌어졌다. 실무자에서 최고책임자에 이르기까지 몸을 던지고 나선 이가 안 보이다 보니 국민의 공포와 혼란은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메르스 사태를 이유로 박 대통령은 미국 방문도 전격 보류했다. 초동 단계부터 박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기민하고 믿음직스럽게 대처했다면 반년 가까이 준비한 한미 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연기하는 외교적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미 하원 조사위는 “9·11테러가 상상력의 실패였다면 카트리나는 지도력의 실패였다”고 분석했다. 메르스 사태는 상상력과 지도력 모두의 실패로 기록될지 모른다.
리더십의 실패와 선동정치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런던에서 독일군의 포탄이 떨어진 곳은 어디든 방문해 국민을 안심시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상황실 소파 귀퉁이에 쭈그려 앉아 오사마 빈라덴 사살작전을 진두지휘하는 군사령관을 지켜보는 모습을 언론에 공개했다. 박 대통령이 진작 메르스 침투현황과 대응작전을 설명하는 질병관리본부장 옆에 서서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보이기만 했어도 정부의 대응 시스템은 달라졌을 게 분명하다.
로버트 라이시는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라는 저서에서 독재자 35명을 다룬 한 사회학 연구를 인용하며 “사람들이 경제적 위협을 느끼고 삶의 안정을 상실할 때 희생양과 단순한 해법을 내놓는 권력에 끌리게 된다”고 했다. 박 대통령에겐 국민을 불안케 하는 사태에 선제적으로 맞서는 돌파형 리더십, 장수형 리더십이 부족해 보인다. 박 대통령이 반복되는 위기의 고리를 끊는 데 실패하면 선동정치가 고개를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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