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연욱]김문수 대구 출마, 감동이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6일 03시 00분


정연욱 정치부장
정연욱 정치부장
1996년 15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경기 부천 소사는 격전지로 분류되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승부가 뻔하다는 예상이 많았다. 야당(새정치국민회의)의 텃밭인 데다가 김대중의 최측근 박지원이 출사표를 냈기 때문이다.

여당(신한국당)에선 김문수가 도전장을 냈다. ‘민중당’에서 ‘보수 여당’으로 전향한 그는 정치판에선 초년병이었다. 누군가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했지만 결과는 김문수의 승리였다. 그의 저돌적이고 끈질긴 승부근성이 빛을 발했다. 평론가들은 ‘부천대첩’이라고 불렀다.

3선 의원을 거쳐 김문수는 경기도지사의 길을 걸었다. 야권은 2010년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2단계 단일화 전략을 구사하며 김문수 공략에 나섰다. 유시민과 김진표의 1차 후보 단일화에 이어 심상정의 불출마를 통한 2차 단일화로 판을 키웠다. 하지만 김문수는 버텨냈다. 작년 지방선거 때도 여권에선 경기도를 지켜내려면 김문수밖에 없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도지사 3선 도전을 거부했다. 대선 도전의 꿈을 미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공석인 대구 수성갑 당협위원장 공모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야당의 김부겸이 버티고 있는 곳이다. 김문수는 “(김부겸에) 대적할 사람이 없어 김무성 대표나 유승민 원내대표, 대구지역 의원들이 모두 (출마를) 좋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3월 대구지역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선 “국회의원을 세 번이나 했고, 더 큰 뜻이 있어 더이상 총선에 출마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스스로 총선 불출마 약속을 번복한 셈이다.

김문수는 현재 여야 대선후보군 중에서 드문 대구경북(TK) 출신이다. 여론조사에선 고향인 TK 지역의 선호도가 수도권에 못 미친다고 한다. 경기도지사 후광효과가 작용했을 것이다. 그는 주변에 “수도권은 나쁘지 않은데 TK가 전라도와 똑같다”며 아쉬워했다고 한다. 좌파 운동가에서 보수 정치인으로 ‘전향(轉向)’했는데도 고향에서 대접받지 못하는 현실이 아쉬웠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TK 기반만 다진다면 대선 정국에서 유리한 교두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김부겸이 만만찮아 대구 수성갑이 쉽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꽃가마’를 탔다는 주장을 반박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갸우뚱한다. 그가 TK 여당 프리미엄에 대한 기대도 접은 것은 아닐 것이다. 결국 그동안 김문수가 걸어왔던 길과 다르다. 바닥에서 ‘부천대첩’을 일궈냈던 당찬 결기는 찾아볼 수 없다.

지금 원내에서 몇 안되는 김문수 사람인 김용태는 언론 인터뷰에서 “그동안 ‘자기희생’을 강조해온 김문수의 정치행보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선택”이라고 비판했다. 김문수 스스로 “정치에 자기희생이 필요하다”고 역설해 왔는데 대구행이 과연 자기희생이냐는 지적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일시적인 여론의 부침은 착시(錯視)일 뿐이다. 시대정신이라는 가치를 부여잡고 끈질기게 버텨내야 한다. 그 시대정신에 인생을 걸어야 자연스럽게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길을 우회할 수는 없다. 국민의 눈은 현명하다.

김문수가 지역구 정치인에 집착했다면 굳이 이런 얘기를 할 필요가 없다. 그는 스스로 ‘더 큰 꿈’을 꾸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지역의 벽을 깨보겠다는 ‘김부겸’의 명분을 압도할 만한 명분,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당당히 말해야 하는데 찾을 수 없다. 개혁적 보수의 큰 깃발도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간다면 단순히 승패에만 집착한 현실 정치인의 한 명일 뿐이다. 정치인이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고 해도 거기에 함몰돼서는 안 된다. 김문수의 대구 출마, 감동이 없다.

정연욱 정치부장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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